강희룡 서예가
강희룡 서예가

공자는 제자들과 일찍부터 춘추오패의 하나였던 제나라 환공의 묘당을 찾았다. 묘당 안에 들어서자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 쓸모없는 술독이 바로 눈에 띄었다. 이 술독을 반기는 공자를 보고 그의 제자들이 의아해하자 제자들에게 술독에 물을 채우도록 시켰다. 물이 반쯤 이상 차오르자 신기하게도 비스듬했던 술독은 바로 섰고, 물이 점점 더 가득 차자 다시 비스듬히 기울기 시작하더니 이내 엎어지고 말았다. 이 독이 제나라 환공이 항상 의자 오른쪽에 두고 가득 차는 것을 경계하며 나라를 다스렸다는 술독이다. 일명 좌우명(座右銘)이라고도 한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배웠다고 교만하게 군다면 반드시 넘어진다는 법을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이다.

현대인들도 해가 바뀔 때마다 스스로 경계하는 격언이나 좋은 문장을 마음의 거울로 삼아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려고 마음에 새긴다. 개인 말고도 정부 또는 정당, 지자체 등 공공기관에서도 한해 목표를 설계하고 달성을 위해 정진할 것을 다짐하는 교훈이나 사자성어를 쏟아낸다. 지난 2019년 새해를 맞아 경북도는 냉재야화(冷齋夜話)에 실려 있는 황정견이 주장한 환골탈태(換骨奪胎)로 정했고, 포항시는 조선 후기 학자인 유도원의 노애집에 실려 있는 사당잠(四當箴)에서 인용된 동필유성(動必有成)으로, 포항시의회는 ‘후한서’ 주목전에 나타나 있는 동주공제(同舟共濟)로 정하여 한해를 마무리했다. 개인들이 각자가 스스로의 삶이 풀어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정하는 좌우명이 ‘작심삼일’로 끝나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없으나 공기관에서 정하는 이러한 사자성어가 도정이나 시정에서 조직의 목표에 대한 실천의지가 일 년 동안 반영되어 시민들을 위해 목표를 완성하였다면 다행이나 그렇지 못하였을 경우에는 감언이설로 시민들을 속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해가 바뀌어 경자년을 맞았다. 2020년 역시 경북도·주요 시군에서는 서로 뒤질새라 경쟁하듯 사자성어에 정책 비전을 담아 마구 쏟아냈다. 푸른 새바람으로 경북에 좋은 일들을 많이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은 도청의 녹풍다경(綠風多慶), 마음을 합쳐 힘써 나아가자는 뜻의 포항시의 합심진력(合心進力)을 비롯해 경북도내 전 기관단체들과 기초자치단체가 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를 보면 새해 비전과 정책 방향을 엿볼 수 있을지 모르나 일 년 후 그 결과에 대해서는 거울 속에서 냉철하게 분석하여 비춰보아야 한다. 역사에 대한 분별 기준이 절대적인 옳고 그름이 아닌 상대적인 이해관계가 되어버린다면 언젠가 우리는 무엇이 옳은 역사인지도 그른 역사인지도 분간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역사는 거울이다. 지난 일이 옳은지 그른지를 알지 못하고서는 현재의 일이 옳은지 그른지는 알기가 어렵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변화에 속도를 내고 발전을 이끌 수 있는 성과를 더욱 많이 만들겠다는 의지로 인용되는 사자성어들이 역사의 거울 앞에서 성찰적이지 않으면 매년 그렇듯이 그 빛을 잃고 말잔치로 끝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