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은목서가 아름다운 함월사 설법당. 함월사는 경주시 포석로 588의 20에 위치해 있다.

달을 품은 절, 함월사는 경주 금오산(金鰲山)에 있는 비구니 사찰로 삼릉 근처에 있다. 함월사가 달을 품고 있어서일까? 삼릉 숲에서는 낮달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천 년의 시간을 품은 삼릉이 달처럼 다사롭고 은은하게 소나무 숲을 지킨다. 소나무 아래로 난 길은 참선하듯 조심스럽고, 그 가운데 깊고 예스러운 숨결들이 늘 그렇듯 먼저 안부를 물어온다. 육신의 피로와 정신의 때가 녹아내린다.

솔숲을 배경으로 식당과 카페들이 늘고 있다. 발길 닿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다니는 거대한 자본의 유혹들, 함월사가 깊은 산중을 두고 이곳에 자리잡은 이유를 알 것 같다. 금자라가 달을 먹으면 캄캄하여 어두운 쪽으로 기울어지고, 달을 먹지 않고 그대로 내 보내면 밝은 쪽으로 기울어지니,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조실 우룡 스님이 이름을 지었다는 함월사다.

절은 정갈하다. 향기 강한 수종의 나무들이 눈길을 끈다. 설법당 앞마당에는 커다란 은목서들이 겨울에도 눈길을 끌고, 봄을 기다리는 목련의 순결한 꽃눈은 차고 건조한 허공에 몸을 맡기고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다. 여름이 오면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해 농염함을 뿌려댈 치자나무의 아찔한 눈빛과 그에 질새라 은목서들의 향기가 존재감을 드러낼 늦가을을 상상하니 턱턱 숨이 막힌다.

철마다 각기 다른 향기로 부처님을 맞을 함월사의 나무들이 앞마당을 거니는 내 안에 하나의 말씀이 되어 머문다. 지금은 향기 없는 피라칸타의 붉은 열매들이 꽃처럼 익어 차가운 계절을 견디고 있다. 어느 한곳으로 치우치지 않으며, 스스로를 틀에 가두지 않고 탐욕도 근심도 모두 내려놓고 중도의 길을 걷듯 함월사의 겨울은 편안하다.

차가운 땅을 밟고 선 나무들의 짧고도 긴 휴식, 제 각각의 향기를 품고 때를 기다리는 나무들의 눈빛이 아름답다. 침묵의 시간이 길수록 향기도 강한 법, 언젠가부터 어둠을 견디는 흐느낌과도 같은 고요가 좋다. 차고 썰렁한 법당과 달리 요사채는 훈기가 돌고 안온하다.

올해 아흔을 맞는다는 우룡 스님은 향기 강한 나무처럼 정정하시다. 어쩌면 반가부좌의 자세가 저토록 편안할 수 있을까? 스님의 살아오신 긴 세월이 보인다. 뿌리 깊은 나무를 연상케 하면서도 미소는 아이처럼 천진스럽다. 힘이 담긴 목소리보다 깊은 연륜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이 더 큰 말씀으로 다가온다.

앉기가 무섭게 음식 앞에서 감사 기도를 하느냐고 물으신다.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다. 내심 깊고 감동적인 말씀을 기대했었는데 스님은 자꾸 그 말씀만 되풀이 하신다. 쪼그리고 앉은 다리는 눈치도 없이 저려오는데 스님은 몇 번이나 하신 말씀을 되풀이 하신다.

“가족 간에 함부로 던진 말 한 마디가 원수 원결(怨結)을 낳게 돼요. 그 원결은 쉽게 녹아내리지 않아요. 깊은 참회나 수행, 크나큰 선업을 닦아야 맺힌 원한을 풀 수가 있어요. 허물없는 사이라고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 돼요. 명심하세요.”

스님은 가족 간이나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마음자리를 돌아보게 하신다. 말씀은 쉽고 평범하면서도 명료하다. 그 실천의 길은 평생이 걸릴 수도 있지만. 듣고 들을수록 말씀들이 살아서 콕콕 나를 찌른다. 풀풀 바람처럼 날리던 눈 속을 걷다 폭설에 갇힌 기분이다.

삶의 기본이 되어야 할 언행을 뒤늦은 나이에 귀 기울인다는 게 부끄럽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가? 현학적인 지식을 좇으며 지적 호기심을 채우거나 끝없이 물질의 노예가 되어 달려왔던 오랜 시간들, 그 만족감은 오래 가지 못하고 늘 뒤가 허전했다. 늦었지만 내게 필요한 공부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절을 나서며 받아든 우룡 스님의 법어집 두 권,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삼배를 한 후 책장을 펼쳤다. 커다란 활자들이 주는 가벼움, 그 고정관념을 없애고 싶었다. 아상의 불길을 끄는데 도움이 될 활자들은 곧 나의 부처님이다. 책장을 넘길수록 마음은 가벼워지고 지혜의 눈이 밝아오는 것 같다.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입문단계에 서 있는 내게 불교와 선(禪)은 한없이 깊고도 어렵다. 잡힐 듯 하면서도 까마득히 멀다. 머리로 아는 것도 아니고 맹목적인 기도가 지름길도 아닌 것 같다. 아직은 좌충우돌 안간힘을 쓰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디딜 뿐이다. 지혜와 덕을 갖춘 불성이 내 안에도 있다는 그 말씀 하나만 믿고서.

사람들이 함월사를 좋아하는 건 향기 강한 수종의 나무들 때문이 아니다. 지혜가 담긴 부처님 말씀을 우룡 스님은 머리가 아닌 몸과 마음으로 행해야 할 과제임을 일러주신다. 힘들다고 느낄 때마다 또 다른 길이 보인다. 아주 작은 오솔길도 언젠가는 큰길로 통한다는 것을 안다.

타인의 불성은 참 잘 보이는데 왜 내 안의 불성은 보이지 않는 걸까? 끝없이 솟아오르는 의문을 안고 오늘도 식탁 앞에서 공양의 기도를 드린다. 작지만 신심을 바로 세우는 길, 그것이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