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돼지해가 가고 쥐의 해가 돌아왔습니다.

쥐하면 저에게는 썩 좋은 기억이 없습니다. 옛날에 아주 어렸을 때 학교에서 돌아오니 안방에 쥐가 한 마리 들어와 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쥐였는데, 우리네 생활에서 쥐란 크든 작든 환영을 받지 못했지요. 저는 어떻게든 이 쥐를 잡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쥐를 한 구석으로 몰았습니다. 저는 이 쥐를 겁도 없이 손으로 잡으려 했습니다.‘아야!’ 하고 비명을 지르는 순간, 저는 쥐한테 넷째 손가락을 물리고 만 것이었습니다. 살갗이 찢기고 피가 났습니다. 아무리 약한 쥐라도 함부로 구석으로 몰 일은 아님을 그때 경험으로 알았습니다.

또 한 번은 부모님이 쥐를 잡으려고 놓은 쥐약에 제가 애지중지 사랑하던 치와와 어미 개‘워이지’가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밤새 이 어미 개가 고통을 못 이겨 담벼락 밑을 파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쥐의 해에 너무 무서운 이야기만 했나 봅니다. 안타까운 이야기는 새해에는 가급적 안 하는 게 좋은데 말입니다.

제가 멀리 여행을 갔을 때입니다. 아주 더운 나라였는데 그때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가려면 자동차를 타고 기차역이 있는 곳까지 멀리 일곱여덟 시간을 한밤에 달려야 했습니다. 포장도 제대로 안된데다 가로등도 없는 길이어서 한밤을 가는데도 여러날이 걸릴 것같이 힘들고 어려운 여행이었습니다. 한 가닥 위안은 제가 8인승 차의 가장 앞자리에 탔기 때문에 앞으로 다가오는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동차 전조등이 시골 길을 비추는데, 그때, 길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제법 큰 쥐 한 마리가 재빨리 건너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이 쥐가 그만 차에 치일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했습니다. 다행이 쥐는 발을 재게 놀려 무사히 자동차길을 건너갔습니다.

차는 계속해서 달리고 그러다가 또 쥐 한마리가 나타났습니다. 아까 보았던 쥐보다 훨씬 작은 새앙쥐였습니다. 저는 또 겁이 덜컥 났습니다. 무사히 건너가야 할 텐데, 이 새끼 쥐는 너무나 작고 발이 느린 것 같았습니다. 아하, 그래도 이 작은 쥐는 그렇게 느리지는 않았습니다. 자동차가 달려오는 큰 길을 작은 쥐는 드디어 간발의 차이로 무사히 건너갔습니다.

서울에 돌아와서 두어달 전에 저는 무슨 일로 파주에 가느라 자유로를 달려야 했습니다. 자유로는 파주, 문산 가는 길이지요. 그런데 쥐가, 또, 그 자동차들 쌩쌩 달리는 아스팔트 도로를 건너는게 아닙니까.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 이번에도 쥐는 무사히 건너는 것이었어요. 무사함이 세 번 겹치는 행운도 세상에는 있는 것이었지요.

경자년 새해에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무사했으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삶은 누구나 소중한 것이니까요.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