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다시 새로운 해가 시작됐다. 21세기 스무 번째 새해가 떠올랐다. 해마다 12월 31일이면 수많은 인파가 동해로 달려 나간다. 지체와 서행을 반복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맹렬 기사들이 거리에 차고 넘친다. 그들의 목표는 하나! 새해일출을 보고 소원을 비는 것이다. 길이 아무리 멀고 고단해도 그들의 바람을 꺾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그만큼 절실한 소망과 꿈이 있다는 얘기다.

싫든 좋든 2020년은 시작됐고, 우리는 다시 새로운 길에 올랐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이 없으며, 길은 다시 다른 길과 이어지며 확장된다. 길을 걸으며 우리는 자연지리와 인문지리를 배우고, 드넓은 자연과 세상의 풍경에 깊이 감복한다. 우리나라가 좁다고들 하는데, 그들에게 매번 묻고 싶은 말이 있다. “그대는 이 나라 산천을 얼마나 다녀보았는가. 자동차나 열차가 아니라 발품을 팔아서 걸어본 곳이 얼마나 되는가?!”

걷는다는 것은 속도의 욕망을 극복하고 사유와 인식과 정서를 극대화하는 일이다. 빨리 달릴수록 우리는 아무것도 보거나 듣지 못한다. 그저 달릴 뿐이다. 그것은 행선지를 향한 유일목표, 즉 도달에만 집중하는 행위다. 과정은 사라지고 결과만 남는 질주의 행렬은 우울하거나 초라하다. 걷는다함은 과정을 중시하는 것이며, 느림에서 비롯하는 새김질과 반성과 성찰이 덤으로 보태진다.

얼마 전에 친구 하나는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순례길’ 가는 것이 꿈이라 했다. 나는 즉시 다른 생각을 전했다. 우리나라 곳곳에 자리한 크고 작은 길을 함께 걸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 것이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거기서도 다시 이동하여 순례길 초입까지 가야 한다. 아주 멀리 있는 타국의 길보다는 산천경개(山川景槪) 수려한 한반도 남단을 느긋하게 걸으며 상념에 젖거나 지난날을 추억하거나 미래를 기획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다.

요즘에는 지자체 곳곳에서 경쟁하듯 길을 제공하고 있기에 발품 파는 일도 어렵지 않다. 부담 없는 일정 짜서 걷다 일상으로 복귀하고, 멈춘 곳에서 다시 출발하면 그만 아닌가. 특별한 목표를 정하지 않고, 이런 길 저런 길, 굽은 길 곧은 길, 언덕길과 산길, 오르막과 내리막, 바다와 강을 끼고 있는 길, 농촌과 산촌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얼마나 유쾌한 일인가.

운이 좋으면 ‘길’의 잠파노와 젤소미나처럼 아픈 사랑을 했던 동반자의 구수한 이야기도 함께할 것이다. 문제는 당장 실천하는 것이다. 내일이나 모레, 그 어느 즐거운 날에 혹은 특정기념일을 염두에 두고 시작하는 것은 성사를 늦출 뿐이다. 현재의 수인이 되어 자기만의 성채에 둘러싸인 채 안주하지 않는다면, 2020년에 우리는 장정에 오를 수 있다.

돌궐을 건국한 돈유곡의 말이 폐부를 찌른다. “성을 쌓고 사는 자, 기필코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 그가 살아남을 것이다!” 정주(定住)와 멈춤은 부패와 타락의 전주곡이다. 바야흐로 새로운 길을 향한 장정을 시작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