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우여곡절 끝에 9에서 0으로 넘어왔다.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세상을 놀라게 할 일이 끊이지 않았던 2019년! 누군가가 제대로 “아홉수”에 걸렸다고 했다. 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믿는 편은 아니지만 “아홉수”라는 말에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갈라질 대로 갈라진 국론을 보면 대한민국은 아홉수에 걸린 것이 확실하다. 아홉수에서 아홉은 9를 의미한다. 그럼 9는 어떤 의미와 기운을 가졌기에 이 나라가 이다지도 어려울까? 9라는 숫자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지만 지금의 시국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하는 설명이 있어 인용한다.

“숫자 9는 분열, 성장하게 하는 양수의 마지막 변화 단계를 뜻합니다. 따라서 달이 차면 기울듯이 성장의 끝에는 반드시 반대되는 기운이 올 차례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큰 충격이 생기게 되는데 현자들은 이 시점에 세상에 큰 변국이 닥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나라에는 큰 변국(變局)이 닥쳤다. 혼란스러움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정치인들의 밥그릇 싸움에 국민들은 하루가 다르게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기고만장의 정점에 있는 정치인들의 눈에 국민의 힘듦이 보일 리 만무하다. 그런 정치인들이 국민 운운(云云)하니 분통이 터진다.

벌써부터 목 좋은 곳에는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려는 철새 정치인들의 대형 선거 홍보물이 내걸렸다. 여태까지 어디에서 무엇 하다가 선거 때만 되면 나타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기인(棄人)도 아마 이런 기인(奇人)은 없을 것이다. 오로지 당선을 위해 네거리에서 기계처럼 손 흔들며 영혼 없는 인사를 할 그들의 역겨운 모습을 생각하니 새해 기분이 다 날아 가버렸다.

분명 달력은 9에서 0으로 넘어 왔다. 그런데 어찌 이 나라는 아홉수 덫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 하고 있을까? 이런 걸 보면 역사는 발전한다는 논리는 오류임이 분명하다. 필자는 최근 들어 “역사는 발전하지 않는다.”라는 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단언컨대 역사는 발전하지 않는다. 정(正)으로 나아간 만큼 딱 그만큼 반(反)으로 후퇴해 합(合)은 결국 제자리이다. 역사는 발전하는 게 아니라 반복될 뿐이다. (중략) 역사의 주체가 달라지지 않았으니 역사가 발전할 까닭이 없다.(….)”

필자의 저 깊은 내면에는 위의 말을 부정하는 소리들이 요동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나라 돌아가는 상황이 내면의 절규를 덮어버렸다. 2019년의 사람들,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이 바뀌지 않았는데 2020년의 나라 모습이 바뀔까? 역사가 반복된다면 우리의 2020년 모습은 어떨까? 언제나 그랬듯이 선거 이후에는 더 극심한 혼돈이 있었다. 희망을 말하고 싶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마음이 아픈 신년 벽두다.

비록 구태의연한 정치인들 때문에 나라가 아직 아홉수에 갇혀 있지만, 교육과 국민이 9를 밀어내고 0의 새 시대를 맞이해야 한다. 0은 시작점을 나타낸다. 국민을 불행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국민들이 희망 안에서 희망의 가치를 공유함으로써 더 큰 희망 만들어갈 그런 시작점이 될 2020년, 대한민국, 교육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