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명 시인
조현명 시인

학기와 학년이 마무리되면서 선생님들은 전에 없던 노동에 시달린다.

그것은 학생부 작성이라는 가중된 업무이다. “원래 선생님들의 업무가 아니냐?” 라는 물음에 답을 하기 싫을 정도로 격무가 되었다.

웬만하면 이것 때문에 담임을 맡기 싫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예전 손으로 쓰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도 나름 어려움은 있었다. 흑색 볼펜으로 써야하고 오기나 잘못쓰기라도 하면 수정이 어려워 아예 다시 쓰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자 수는 지금에 비하면 몇 자 적은 것도 아니다. 그것 때문에 고민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학급당 학생 수가 줄어도 자율 활동, 동아리 활동, 봉사 활동, 진로 활동의 특기사항에다 과목별 세부능력특기사항과 종합의견란으로 써야하는 항목이 늘어났다. 게다가 기록을 구체적으로 해야 대입에 도움이 된다고 하기에 없는 글을 짜내느라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이런 변명을 하면 관리자나 교육청에서는 미리 관찰기록을 작성하고 누가기록을 바탕으로 쓰면 쉽지 않겠느냐며 반문한다. 그러나 누가기록을 놓고 보아도 막연할 때가 많다. 글쟁이인 내가 그런데 글쓰기에 능숙하지 못한 선생님들은 어떤 심정일까 생각이 든다. 올해부터는 또 거짓으로 꾸며 쓴 내용이 있으면 징계하겠다고 엄포까지 공문으로 전달받은 상태이다. 이러고 보니 진퇴양난이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부탁과 성화에 좋은 글을 짜내어 없는 것도 좋게 꾸며내야 할 판인데 감사가 겁이 나서 함부로 거짓으로 꾸밀 수도 없고 적당히 에둘러 적다보면 구체적이기보다는 두루뭉수리하고 추상적인 내용일 수밖에 없다. 어떤 학생이든지 성실하고 적극적이고 열심히 노력하고 훌륭하며 매사에 솔선수범하는 멋진 학생이다.

복사하기 붙여넣기를 하다 보니 문장이 같아지는 학생이 많아지면 그것도 지적사항이 된다. 수업 장면에서 학생의 능력을 좋게 써주려고 하다 보니 교육과정을 넘어가기도 한다. 그러면 지적사항이다.

해마다 같은 내용을 하는 동아리의 기록을 달리해야 하다 보니 순서나 행사들을 나누어 적기도 한다. 그러다가 같은 문장이 3년 반복되어 지적되기도 한다. 오타나 말도 안 되는 문장, 길게 늘어져서 읽기가 거북한 문장, 자율 활동에도 나오고 진로 활동에도 나오고 종합의견에도 나오는 똑같은 문장 이런 것들이 수도 없이 지적된다. 그럼에도 이것을 가지고 대학입학사정관들은 점수를 매긴다. 대입의 당락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선생님의 글 솜씨에 의해 학생들의 당락이 좌우된다니 그냥 글쓰기가 아니다. 신경을 바짝 써야하는 어려운 글쓰기이다. 이런 격무는 대한민국에서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몇 해 전 해외토픽에도 오르기도 했다. 이후 교육부가 학생부의 공정성을 위해 글자 수를 줄이고 항목도 줄인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학생부종합전형이 그대로 유지되는 이상 없어지지 않을 격무다.

게다가 이것으로 학교 수업을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삼겠다는 발상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그대로 유지될 격무이다. “누가 여기서 좀 구해주시오”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격무의 늪에 빠진 교사들을 다 외면하고 지나쳐 갈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