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2년 뒤로 하나 있어 어제는 베트남 가기 전에 한번 만나기로 했다. 요즘 베트남 특수라고 거기 일이 많다는 것이었다. 대학생 시절 이후 그와 나는 오래 못 만났다. 말수 적기는 옛날 그대로, 그때는 ‘노선’이 달라 같이 얘기하기도 힘들었건만 지금은 옛날 정이 새로 돋는 듯하다. 한번은 일 삼아 나를 만나러 학교에 오기도 했다.

ㅡ학교 올라가느라 마을버스 탔는데 왜 그렇게 조용한지 정나미가 떨어지드만요.

정 많은 사람은 버스도 시골 할머니들 왁자지껄버스가 맘에 드는 격이다. 둘러보니 모두들 핸드폰에 코를 박고들 있었다 한다.

ㅡ어디 마을버스뿐? 전철 안에서도 다들 그렇지.

후배한테는 이 휴대폰 ‘열정’이 차가운 인정세태를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듯했다.

ㅡ그렇게 사회성이 없어서야 세상이 어떻게 되겠어요?

후배는 아직도 먼 후배들의 차가운 인정세태가 못 미더운 듯하다. 80년대에 대학 다닌 사람들에게는 사회성 콤플렉스가 있다.

우리 사이에는 막걸리가 있어 견해 차이는 필요없다. 나는 속으로 이 휴대폰 몰입 풍경을 생각한다.

혹시 그건 사적인 삶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해 보려는 안간힘 같은 것은 아닐까.

요즘 세상은 ‘자기만의 방’이 없다. 집은 아파트, 모든 문이 거실을 향해 ‘열려 있다’. 직장에 가면 파티션만 쳐졌을 뿐 숨소리조차 골라야 할 ‘사회적’ 공간이다. 버스도, 전철도 모두 타인에게 개방되어 있다. 한 마디로 말해 ‘자기만의 공간’은 없는 세상이다.

ㅡ베트남은 인구가 얼마나 되나? 한 8천만 되나?

ㅡ근 1억이죠. 한국어 배우려는 사람은 3백만쯤 되고. 앞으로 1천만은 되잖을까요?

나는 후배의 ‘장밋빛’ 전망을 들으며 한국에서는 나날이 사람 숫자가 줄어들 것을 생각한다.

전철 안은 출퇴근 시간이면 발 디딜 틈도 없다. 한낮에 전철을 타면 마음대로 발을 뻗을 수 있어 좋건만.

비엔나에 갔더니 그곳 사람들은 서 있는 사람들 잔뜩 있어도 혼자 두 자리씩 차지하고 다리를 쭉 뻗고들 앉는다.

배려심들 없는 건가? 아니, 앉은 김에 어디 맘껏 앉으라고, 서 있는 사람들이 앉은 사람들 배려해 주는 중이다.

서울에서는 어림도 없다. 공간의 민주주의가 어찌나 드센지 조금이라도‘일인분’을 넘어서면 가차없다. 그러니 모두들 자기한테 몰두하고들 싶다. 이어폰 끼고 화면만 보고 있으면 일인분 세상을 충만히 즐기고도 남을 수 있는 것이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