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50년 집권론’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이 대표가 처음 그 말을 했을 때 많은 이들이 뜬금없는 희망가이거나 오만한 발언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지난해 울산시장선거를 앞두고 청와대가 나서서 야당 후보의 공약사업을 물 카드로 만들고, 경찰을 동원해 파렴치범으로 몬 정황이 드러나면서 얘기가 달라지고 있다. 최근 뜨거운 뉴스로 떠오른 이 논란의 ‘협잡’ 의혹은 이해찬이 무슨 자신감에서 그런 장담을 해왔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작년 울산시장선거에서 당시 시장이던 한국당 김기현 후보와 현 시장인 민주당 송철호 후보는 각각 ‘산업재해 모(母)병원’과 ‘공공병원’ 건립 공약을 내걸고 경쟁했다. 선거일을 불과 보름 앞두고 정부는 ‘산재 모병원’에 예비타당성 조사 불합격 판정을 내렸고, 송철호가 시장으로 당선된 후 올 1월 ‘공공병원’을 예타 면제사업으로 선정한 데 이어 지난달 KDI의 사업 적정성 검토까지 완료했다. 도대체 무슨 뒷구멍 꼼수 장난질이 펼쳐지고 있는 것인가.

경찰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으로 시작된 이 사안은 수사의 단초가 된 첩보가 청와대발이라는 사실이 본질이다.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의 메모에 따르면, 송철호는 후보가 되기 전부터 청와대 인사들을 만나 선거 관련 논의를 한 정황이 뚜렷하다. 당내경선 상대였던 임동호를 주저앉히고 송철호를 단독 전략공천하기 위해 청와대 참모들을 비롯한 정권 실세들이 합동작전이 펼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도 역력하다.

선거법 개정과 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법을 둘러싼 여야의 정쟁은 비상식의 난장(亂場)이다. 집권당은 교섭단체 중심이 아닌 마음에 맞는 초록 동색들을 아울러 ‘4+1’이라는 희한한 협의체를 앞세워 입법을 강행하고자 들이밀고 있다. 친여 군소정당들이 비례대표 의석을 더 확보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주는 대가로 대통령 친위부대 공수처를 바꿔먹는 뒷거래를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공수처는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장악할 수상한 옥상옥 사법기관이다.

그런데 한국당이 회심의 일격을 가했다. ‘비례 한국당’이라는 위성정당 맞대응 반전 카드다. 이미 외국에도 사례가 있다는 이 기습반격에 그동안 의기양양하던 여권(與圈)은 허를 찔린 듯 당황한 기색이 완연하다. 민주당·정의당 할 것 없이 차례로 나서서 ‘꼼수’라며 바짝 흥분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객관적으로 보면, ‘4+1’ 꼼수를 되받아친 자유한국당의 꼼수는 역설적이게도 절묘한 ‘묘수’로 작용하고 있는 형국으로 읽힌다.

‘꼼수 공화국’의 냄새 나는 시궁창 드라마에 청와대가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 얄궂은 현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청와대 모든 비서관실에 붙어 있다는 ‘춘풍추상(春風秋霜)’ 액자를 모조리 뒤집어 달아야 할 판이다. 거룩한 본뜻은 산산조각이 나고 ‘남을 대할 때에는 서릿발처럼, 자신을 대할 때에는 가을 봄바람처럼’으로 의미가 물구나무를 서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민주주의가 점점 더 위태로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