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역대 국회의장이 퇴임을 하면 흔히 세가지 길이 있다고 한다. 첫째가 정계원로의 길을 걷는 경우다. 황낙주·박관용·임채정·김형오·박희태·강창희 전 의장 등이 이 길을 걸었다. 둘째는 퇴임후 다시 총선에 출마해 선수를 더한 경우다. 박준규·이만섭·김원기 전 의장이 그랬다. 셋째는 국회의장을 지낸 뒤 대권에 도전한 경우다. 초대의장인 이승만 전 대통령과 신익희 전 의장이 그랬다. 이번에 총리후보자로 지명된 정세균 전 국회의장은 모 중앙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세가지 길 중 어느 길을 걷고 싶으냐”는 질문에“제4의 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말이 씨가 됐을까. 정 전 의장은 자신이 한 답변 그대로‘제4의 길’을 걷고 있다. “정치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이 변화무쌍한 생물”이란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19일까지 나흘째 패스트트랙 규탄대회를 열고, 여당의 공수처법과 선거법 날치기를 저지하겠다는 결기를 보이고 있다. 며칠 전에는 국회내에 한국당 지지자들이 대거 몰려 들어와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최근의 한국당 집회에는‘태극기 부대’로 상징되는 극우단체까지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한국당과 황교안 대표가 국회 로텐더홀 밤샘농성에 이어 국회앞 규탄대회 개최 등 장외투쟁으로 번져가면서 급속히 극우성향으로 치닫는 데 대한 우려다.

여당이 새해 예산을 일방적으로 날치기 통과시킨 후 다수의 횡포를 막기 위해 장외투쟁으로 치달은 한국당의 입장을 이해못할 바 아니지만 정치권의 우려는 깊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야당으로서 집권여당과 싸우는 방법이 빗나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한국당이 패스트트랙 저지에 올인하면서 장외투쟁으로 뛰쳐나가는 것은 오히려 논점을 흐리는 것이란 비판이다. 사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군소야당의 협의체인 ‘4+1협의체’가 힘을 합쳐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나서면 한국당이 물리적으로 막을 수 없다. 협의체가 과반수를 확보해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법을 통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당이 며칠째 전국의 당협위원장들을 동원해 규탄대회를 여는 이유가 뭘까. 추측컨대 여당과 협의할 명분, 즉 출구전략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공수처 법안만 해도 한국당 일각에선 일부 독소조항을 바꾸면 통과시키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목소리가 있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골자인 선거법 개편안은 거대정당인 민주당과 한국당의 이해관계가 거의 일치한다. 그러니 이제라도 여당과의 물밑대화로 꼬인 정국을 푸는 게 옳다. 그런 연후 청와대 하명수사,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무마사건, 우리들병원 특혜 부정사건 등 ‘친문3대 게이트’를 대여공세의 지렛대로 하고, 민생경제 침체를 강도높게 비판하며 이를 극복할 대안을 제시하는 대안정당의 모양새를 갖춰야 한다. 아울러 참신한 인물을 적극 영입해 쇄신바람을 일으키고, 보수의 목소리를 한데 모아 보수통합을 이뤄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한국당이 가야할 제4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