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무언가 잃어 간다는 것은/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중략)// 낙과(落果)여, 네 마지막의 투신을 슬퍼하지 말라./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 번의 만남인 것을//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오늘도 잃어 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오세영, ‘시월’)

지난 10월을 건너면서 필자는 매일 ‘시월’을 읽었다. 아름다운 이별과 잃어가는 연습이라는 두 단어가 힘겨운 10월을 견디는 힘을 주었다. 참 어수선했던 나라, 올해만 살고 말 것처럼 숨 막혔던 집회의 대한민국 2019년 10월! 절망의 10월을 넘어오면서 필자는 “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 번의 만남”을 상상했다. 그 만남은 안정되고 희망찬 12월이었다. 그런데 그 상상은 허상이 되었다. 10월을 데자뷰 하듯 광장은 또 시끄럽다.

오로지 집권 연장에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과 다시 그 자리에 가기 위해 사생결단을 하고 있는 사람들! 대한민국 정치엔 이 두 부류의 사람들 말고 오롯이 국민에게 희망을 제시하는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없다. 패스트트랙이고 뭣이고 이 나라 정치인들이 하는 모든 짓은 자신들의 정치 생명 연장을 위한 정쟁(政爭) 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아픈 것은 이 나라 정치야 태생부터가 국민과는 별개로 정치인 자신들의 영욕을 위한 싸움의 장이라고 치더라도 교육은 왜 이 모양이냐는 것이다. 정치판에 구속된 교육의 모습이란? 교육 전문가도 아닌 대통령의 감정적인 말 한 마디에 교육 시스템 전부가 바뀌는 이런 말도 안 되는 교육 판에 우리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맡길 수 있을까?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발표가 끝나기 무섭게 고등학교 정문은 물론 골목마다 대학 합격을 축하하는 가로펼침막이 내걸렸다. 대상 학교는 S대학교! 축하할 일이고, 축하받을 일이다. 그 학교에 합격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을지 알기에 필자도 뜨거운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그러면서 필자는 생각한다, 정말 이 나라 초중고 교육의 끝이 어디인지? 그 끝을 이야기 해주는 말이 있다. “서, 고연, 서성한, 중경외시, 건홍동 ……” 필자도 오래 전부터 씁쓸하게 이 말을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노래하듯 해오고 있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났지만 이 말은 없어지기는커녕 더 큰 생명력을 얻고 있다.

이 나라 학생들은 역사 속 임금 순서보다 이 말을 더 절실히 외우고 있다. 이것이 마치 이 나라 교육의 종착지인 양 생각하고 무조건 앞쪽에 들기 위해 올인한다. 만약 들어가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다시 공부해서라도 순서를 당기려 애쓴다. 학생들의 희망과 행복지수, 출산율 등 이 나라 교육은 참 많은 것을 잃었다. 시에서는 “잃어 간다는 것은/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 나라 교육은 언제 즈음 성숙의 반열에 올라 모든 학생들이 행복하게 학교에서 자신과 나라의 밝은 미래를 준비할 수 있을까? 올해가 이런데 내년이야? 희망 없는 내년을 맞이해야 할 학생들에게 미안하기만 한 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