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 철

초록은 초록만으로 이 세상을 적시고 싶어한다

작은 것들은 아름다워서

비어 있는 세상 한 켠에 등불로 걸린다

아침보다 더 겸허해지려고 낯을 씻는 풀잎

순결에는 아직도 눈물의 체온이 배어 있다

배춧값이 폭등해도 풀들은 제 키를 줄이지 않는다

그것이 풀들의 희망이고 생애이다

들 가운데 사과가 익고 있을 떼

내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만의 영혼을 이끌고

어는 불켜진 집에 도착했을까

하늘에서 별똥별 떨어질 때

땅에서는 풀잎 하나와 초록 숨 쉬는

갓난아기 하나 태어난다

밤새 아픈 꿈 꾸고도 새가 되어 날아오르지 못하는 내 이웃들

그러나 누가 저 풀잎 앞에서 짐짓

슬픈 내일을 말할 수 있는가

사람들이 따뜻한 방을 그리워할 때

풀들은 따뜻한 흙을 그리워한다

풀잎에서 생명을, 생명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과 희망을 보는 시인의 깊은 시안을 본다. 풀잎에서 순결함과 겸허함을, 치유와 구원을 느끼는 섬세한 시인의 언어를 따라가다 보면 정결하고 투명한 시심을 발견할 수 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