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룡 서예가
강희룡 서예가

조선시대는 토지에 세금을 부여하는 것이 국가의 가장 큰 재원이었다. 건국 초기에는 손실답험법(損失踏驗法)이라 하여, 풍·흉년을 직접 조사하여 세금을 매겼으나, 토지를 조사하는 관리들의 성향에 따라 좌우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많아 세종시대 역시 과세기준에 고민이 있었다. 이에 임금은 공법(貢法)이라는 새로운 세법을 마련했다. 공법이란 국가가 수취하는 토지세의 한 제도로서, 수년간의 수확고를 통산하여 평년의 수익을 정해진 비율로 삼아 세금을 매기는 제도였다. 세종 12년의 ‘세종실록’ 기록을 보면 세종은 공법 결정 이전에 과거시험에 공법 관련 내용을 출제하여 공법 제정 문제가 조정의 현안임을 강조하는 한편, 공법시행 이전에 신하와 유생들의 의견을 알아본 후에 최종적으로 공법의 시행은 백성이 결정할 사안으로 판단하였다.

1430년(세종12) 세종은 이 새로운 세법 시안을 갖고 백성들에게 그 찬반 의사를 묻는 국민투표를 3월 5일부터 8월 10일까지 무려 5개월간 실시하였다. 치밀한 성품과 백성들을 최우선으로 하는 세종의 의지가 워낙 강했기 때문이었다.

세종실록에는 ‘정부와 육조, 각 관사와 각 도의 감사, 지방수령 및 여염(閭閻)의 세민(細民)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부(可否)를 물어서 아뢰게 하라.’는 기록은 임금이 백성들이 좋지 않다면 이를 행할 수 없다고 천명한 것이다. 8월 10일 호조에서 발표한 국민투표 결과보고를 보면 17만여 명의 백성들이 투표에 참여하여, 9만8천657명이 찬성, 7만4천148명이 반대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 시절에 수많은 백성들을 대상으로 일일이 투표에 참석하도록 한 점은 매우 눈길을 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특히 조세에서 백성이 찬성하지 않으면 행할 수 없다는 성군으로서 세종의 선언은 오늘날에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지난 10일 여당은 제1야당을 배제하고 4+1협의체라는 정당구조로 512조의 슈퍼예산안을 28분 만에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즉 대대적인 세금 ‘나눠먹기 짬짜미’를 한 것으로 그야말로 예산을 농단하며 희대의 ‘세금 도둑질’을 한 것이다. 입법부 수장으로 중립의무를 지켜야 할 국회의장이 그의 지역구에 아들 세습공천을 위해 여당의 선봉대 역할을 했다는 게 진실이라면 그는 이미 의장으로서의 역할과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은 끝난 것이다.

더구나 박지원 의원은 그의 지역구 목포에서 의정보고회 때 아예 ‘예산농단주범, 세금도둑 박지원입니다’를 인사말로 세금도둑질을 공개적으로 자랑하며 다니니 이런 부류의 정치인들로 인해 납세의무를 성실히 수행한 국민들은 세금을 내면서도 뭔가 빼앗기고, 분하고, 부당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민본과 민주적 절차’와 소통을 중시했던 세종의 의지는 600년 전의 국민투표를 가능하게 했고, 그 성과물인 공법은 시대를 더욱 빛나게 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정치인의 작태를 보면 ‘납세의무를 국민이 당연히 져야만 하는가?’라는 의문만 더욱 강하게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