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 통로에서 본 신선사 마애불상군. 신선사는 경주시 건천읍 단석산길 175-143에 위치해 있다.

신선이 노닐 법한 환상적인 이름과는 달리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 단조롭고도 가파르게 이어진다. 여느 산과 다름없는 겨울 풍경에 지쳐갈 무렵 독경소리가 마중을 나오고, 산 위의 양지바른 곳에는 바람 한 점 없이 따사롭다. 월동 중인 초록의 으름덩굴과 겨울햇살이 불이문 되어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가 펼쳐질 것만 같다.

신라의 명장 김유신이 한 노인으로부터 신검(神劍)을 얻어 이 산의 바위굴에서 검술을 닦았는데, 시험 삼아 칼로 바위를 내리치니 바위가 갈라졌다. 이에 산 이름을 단석산이라 했고 갈라진 틈에 절을 세워 단석사라 불렀다고 한다. 더러 신선사라는 절 이름을 화랑과 관련된 미륵신앙의 기도처로 생각하는 의견도 있다.

신선사(神仙寺)는 7세기에 활동하던 자장의 제자 잠주(岑珠)가 창건한 법화종 사찰이다. 옛날 절 아래에 살던 한 젊은이가 이곳에 올라와 노인들이 바둑을 두는 걸 구경하고 집에 오니 아내는 이미 백발의 노파가 되어 있었다. 50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그 뒤부터 이 바위를 신선이 바둑을 둔 곳으로 불렀고, 절 이름도 신선사라 했다는 전설도 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염불소리에 귀를 세운 겨울 가지들의 눈빛이 신비스러울 정도로 빛난다. 골짜기는 봄 숲처럼 환하다. 좁은 비탈에 자리한 신선사도 계절의 을씨년스러움을 표정없이 비켜 앉아 있다. 콸콸 감로수 떨어지는 소리 요란한데 나이 많은 느티나무의 위엄이 눈길을 끈다. 겨울을 나기 위한 시래기 타래가 바람에 흔들리며 인사를 건넨다. 소박한 절이다. 산그늘에 발을 담그고 서 있는 대웅전과 석등조차 독송에 잠겨 스스로를 다스리고 있다.

대웅전 법당은 작지만 안온하다. 앞마당을 지나치는 등산객들의 발자국 소리 때문일까 마음이 동요를 일으킨다. 대웅전 마당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나무데크 끝머리에 위치한 높다란 암벽과 인공 천정, 미륵전이라 적혀 있다. 나는 암벽을 돌아 서쪽으로 난 보다 넓은 출입구로 들어선다.

신라 최초의 석굴사원, 거대한 ㄷ자 암벽의 자연석실에 들어서며 이십여 년 전 찾아갔던 이집트의 카르낙 신전을 떠올린다. 긴 시간을 뛰어 넘어 파라오를 만난다는 설렘으로 람세스를 탐독하던 시절, 나는 풍요로웠던 이집트의 물질 문명보다 람세스와 네페르타리의 성숙한 영혼을 찾아 헤맸다. 거대한 석상들의 웅장함과 물밀 듯 찾아드는 관광객들, 카이로의 회색빛 소음 속에서 나는 얼마나 혼란스러웠던가. 진정한 파라오의 힘과 자존심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듬성듬성 청이끼가 낀 미륵불이 지긋이 미소짓고 있다. 반쯤의 밝음과 반쯤의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신비로운 기운이 생동감으로 이어진다. 국보 제 199호인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삼존불의 시선 속에 파라오와 비교할 수 없는 전율이 인다. 환상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 두 손을 모으고 불상들을 우러러본다. 내부에 새겨진 명문은 마멸이 심해 완전한 판독은 어렵지만 이 석굴의 절 이름이 신선사이며 본존상이 미륵장육상임을 밝히고 있다.

신라를 가장 현실적인 불국토라 여겼던 신라인들, 그들은 불교의 발생지인 인도를 종주국으로, 신라를 아류국으로 폄하하지 않았다. 서축에 견줄 만한 동축의 불교 주인국이라는, 강한 문화적 주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새로운 불교의 종주국으로 여기며 당당한 주체정신을 가졌던 신라인의 숨결, 마치 암벽으로 둘러싸인 영혼의 우물 속에 떠 있는 것 같다.

가만히 눈을 감고 젊은 김유신을 생각한다. 성골이 아닌 비주류 가야 왕족 출신으로 신라의 중추적 인물이 되기까지의 갈등과 고뇌, 수많은 낭도들을 이끌고 중악석굴에서 자신을 단련시키는 의연한 모습까지. 8.2m 높이의 거대한 미륵보살은 알고 있으리라. 온화한 시선 속에 담고 있는 말씀과도 같은 궤적들을. 삼면에 10여구의 부처와 보살상이 조각되어 있지만 북쪽 암벽에 새겨진 주존불인 미륵불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중악석굴이 이곳인지 팔공산 중암암인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땅을 빛나게 했던 신라인의 정신문화다. 원광법사와 세속오계, 삼국을 통일한 호국정신, 그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미래상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칼로 잘린 듯한 거대한 암벽을 쓰다듬어 본다.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주민들이 탱바위라고 부른다는 암벽 속을 염불소리 홀로 기도가 되어 드나들 뿐, 정상을 향해 오르내리는 등산객들만 바람처럼 들어왔다 또 바람처럼 사라진다. 한차례 왁자함을 쏟아내며 사진을 찍고 떠난 자리는 참으로 허전하다. 행여 우리는 설화적인 요소에 갇혀 고대 역사를 신화와 혼동하며 가볍게 여기지는 않는가?

나와 역사에 대한 깊이가 빈약할수록 현실은 메마르고 비참해질 뿐이다. 신라인들이 가장 축복받고 이상적인 불국토라 여겼던 이 땅, 우리의 문화와 정서 속에 면면히 살아 있는 천년의 혼을 나는 외면한 채 무엇을 갈망하는가?

심장에 가까운 붓다의 말씀이 들린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부디 자애의 마음으로 충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