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한 손맛, 겨울 동해안 낚시 기행 3 - 호랑이 꼬리에 숨은 은빛 농어를 찾아서

호미곶 먹등대의 황혼 무렵.

농어는 바다 루어낚시 최고의 대상어다. 오늘날 바다 루어낚시라는 장르를 대중화시킨 것도 바늘에 걸린 채 은빛 왕관을 번쩍거리며 물 위로 힘차게 점프하는 농어의 바늘털이다. 그 순간 낚시꾼은 황홀한 흥분에 휩싸여 몸이 달아오른다. 우리나라 루어낚시의 첫 걸음은 쏘가리 낚시이지만, 바다의 경우 농어가 원조다. 농어 루어낚시가 인기를 끈 이유는, 배 위에서 무거운 추가 달린 낚싯바늘을 수직으로 내리는 생미끼 낚시에 비해 스포츠적인 요소가 강하기 때문이다. 선장이 배를 대주는 곳에 채비를 내리기만 하면 되는 선상낚시와는 달리 농어 루어낚시는 갯바위 도보낚시든 선상낚시든 간에 농어가 있을 만한 포인트에 루어를 정확히 던지는 ‘캐스팅’ 능력이 요구된다. 낚시꾼이 트위칭, 저킹, 리트리브 등 액션으로 루어의 다양한 움직임을 연출해 농어를 유혹해낸다는 것 또한 묘미라 할 수 있다. 파도가 부서지는 흰 포말 속에서 갑자기 덜컥, 하는 입질과 함께 ‘찍, 찌이익-’ 릴 드랙이 풀리는 소리, 바늘에 걸린 농어가 물 아래로 꾹꾹 처박으려 할 때마다 초릿대는 활처럼 이리저리 휘어지고, 농어가 쏜살 같이 튀어 올라 공중 점프를 하는 순간, 낚시꾼의 온몸에 전율이 돋는다. 농어 루어낚시는 짜릿한 손맛과 황홀한 눈맛을 모두 충족하는 낚시다.
 

동해안은 겨울에도 농어 입질 활발해
소형 콤비보트 타고 루어낚시 한판 승부
어떤 식으로 조리해도 맛있는 자연산 농어
양식과 비교하자면 회의 ‘때깔’부터 달라

7∼9피트 길이의 미디움라이트 또는 미디움 액션 낚싯대와 2500∼4000번 릴, 원줄은 합사 1∼1.5호, 쇼크리더는 나일론이나 플로로카본 15∼20파운드를 사용한다. 거기에 7∼15cm 크기의 미노우나 20∼30그람 내외의 바이브레이션, 스푼, 메탈지그, 또는 1온스 이하 지그헤드에 4∼5인치 웜을 달아 던진다. 농어는 멸치와 학공치 등 먹이고기들이 있는 곳을 찾아 회유한다. 대개 물이 와서 받치는 곳들, 이를테면 곶부리, 홈통, 수중암초, 간출여, 여밭, 몽돌밭, 해상등대 주변은 조류 소통이 원활하고 농어가 은신하기 좋은 환경이므로 특급 포인트가 된다. 파도가 깨지면서 하얗게 포말이 일어나는 곳, 물의 뼈가 사방으로 흩어지는 곳에서 농어는 온몸을 날카로운 섬광의 검으로 벼리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세 종류의 농어가 있다. 점무늬의 유무에 따라 민농어와 점농어로 구분하고, 제주 남부 지방에서 주로 서식하는 넙치농어도 있다. 민농어와 점농어는 점무늬만 빼면 서로 똑같이 생겼지만 넙치농어는 체형이 좀 다르고, 그 힘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전문 낚시꾼들 사이에서도 잡기 힘든 ‘꿈의 대상어’로 꼽힌다. 맛도 굉장히 좋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넙치농어만큼이나 민농어, 점농어도 귀하다. 동해안에서 잡히는 농어는 대부분 민농어다.

 

마침내 잡아낸 동해안 겨울 농어.
마침내 잡아낸 동해안 겨울 농어.

점농어는 서해에 주로 서식하고, 가끔 거제나 통영 등 동해 남부에서 잡히는 경우가 있다. 연안 찌낚시나 원투낚시에 종종 걸려드는 것은 40cm 이하의 ‘까지매기’(농어 새끼를 뜻하는 경상도 말. 전라도에서는 ‘깔따구’라고 부른다)가 대부분이지만, 루어낚시로는 대물 농어 ‘따오기’(80cm 이상의 농어를 뜻하는 낚시꾼 은어)를 만날 수도 있다. 70∼80cm급 농어 한 마리를 잡으면 성인 대여섯 명이 회와 구이, 탕으로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여름 농어 못지않게 겨울 농어 또한 최고의 미식 재료다.

경북 동해안에서는 포항과 경주가 농어 루어낚시의 일번지로 꼽힌다. 농어 낚시 시즌이 이미 종료된 서해안과는 달리 동해안에서는 겨울에도 농어 입질이 활발하다. 갯바위 도보낚시 또는 방수복과 전용 부츠를 신고 연안 여밭이나 간출여로 진입해 파도를 온몸으로 맞으며 하는 ‘락쇼어’ 낚시 중 어떤 방식으로 농어를 노려볼까 고민하다가, 좀 더 편하고 낚시 성공 확률이 높은 레저보트를 이용하기로 했다. FTV 한국낚시채널 ‘바다로 간 쏘가리’ 진행자인 이찬복 프로와 함께 135마력의 선외기를 장착한 6인승 소형 콤비보트를 타고 ‘호랑이 꼬리’에 숨은 농어와 한판 승부를 벌이기 위해 호미반도 강사2리 선착장에서 배를 띄웠다.

세상 모든 낚시가 다 재밌지만, 나는 소형 보트를 타고 즐기는 농어 캐스팅 낚시에서 가장 짜릿한 매력을 느낀다. 우리는 호미곶, 대보, 삼정, 석병, 구룡포를 드나들며 홈통과 곶부리와 수능능선, 수중암초, 여밭 지역을 게릴라처럼 치고 빠지기로 했다. 7.6피트 미디움라이트 로드에 2500번 릴, 합사 1.2호 그리고 쇼크리더 3호로 만끽하는 동해안 겨울 농어와의 경쾌한 파이팅은 그야말로 ‘스포츠’의 정수일 것이다.

 

동해안 자연산 농어회.
동해안 자연산 농어회.

겨울하늘처럼 바다도 한없이 푸르기만 했다. 바람도 파도도 없어 잔잔한 동해는 마치 청색 원피스 같고, 우리의 보트는 그 위를 스팀다리미처럼 미끄러져 나가며 바다의 주름을 부지런히 폈다. 달리는 보트 위에서 겨울의 정취를 만끽하는 내 옆구리에 파도가 스칠 때마다 은빛 비늘이 무성히 돋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공중으로 튀어 오르는 파도 낱알 속에 그리운 이의 눈시울이 언뜻 언뜻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좀처럼 입질이 없었다. 낚시꾼들이 흔히 ‘청물’이라고 불리는 맑은 조류가 흘러들면서 바다 속이 바닥까지 훤하게 보이는 통에 농어들의 경계심이 높아져 낚시하기 까다로운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오후부터 바다가 수상했다. “바다가 왼종일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김춘수, ‘처용단장’)던 시구가 떠올랐다. 바람이 터지면서 너울이 치기 시작했다. 바다는 자꾸 음흉하고, 흐린 하늘에 지워진 수평선을 보고 있으면 몽롱했다. 물이 날카로운 예각으로 빛나는 것을, 바람의 모서리에서 물방울들이 거품을 물고 죽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농어들의 경계심이 느슨해져 낚시하기에는 좋다. 호미곶, 호랑이 꼬리에 숨은 은빛 농어를 잡기 위해 수중여 포말 속으로 끊임없이 루어를 던지고 또 던졌다.

강한 입질을 받았다. 제법 힘쓰는 것을 보니 농어인 듯하다. 그런데, 꽤 버티다가 금방 맥없이 끌려나오는 게 거무튀튀하다. 농어는 아니다. 물 위로 올라온 것은 쥐노래미, 동해안에서는 게르치라고 부르는 물고기다. 50cm에 가까운 대물이지만 1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산란철을 맞아 쥐노래미 금어기가 시행 중이기에 잡자마자 곧장 바다로 돌려보냈다. 다시 캐스팅, 또 캐스팅…. ‘톡’하는 입질과 함께 딸려오는 것은 제 몸만 한 루어를 탐한 볼락이었다. 초조해졌다. 겨울 동해안의 태양은 일찍 수평선을 넘어 간다. 금세 어둑해진 호미곶 바다, 이제 기대할 것은 ‘피딩타임’ 뿐이었다.

 

자연산 농어 스테이크.
자연산 농어 스테이크.

‘상생의 손’ 조형물과 새천년기념관 위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 끊임없는 캐스팅으로 몸에 열기가 돌아 두꺼운 겨울 패딩은 이미 벗은 지 오래, 바람을 뚫고 호미곶 먹등대 주변을 돌며 루어를 던졌다. 먹등대에서 십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곳의 수중여 근처, 병든 물고기의 움직임처럼 보이도록 액션을 주던 루어를 잠시 멈춘 순간 덜컥, 하는 입질과 함께 꾹꾹 처박는 농어 특유의 경쾌한 파이팅이 시작되었다. 바늘이 빠지지 않도록 낚싯대를 낮추며 긴장을 팽팽하게 유지시키고, 낚싯줄이 터지지 않게끔 릴 드랙 장력을 조절하며 농어의 힘을 뺐다. 줄다리기 끝에 마침내 검푸른 물 밑에서 은빛 섬광이 번뜩이는 순간, 온몸의 피가 나른해지며 무언가 내 몸에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물 위로 끌어올린 녀석은 70cm급의 잘 생긴 동해안 농어. 겨울 바다가 준 멋진 선물이었다.

농어는 회로 먹는 게 가장 좋지만, 소금구이나 스테이크, 매운탕, 맑은탕 등 어떤 방식으로 조리해도 다 맛있다. 우리가 시중에서 먹는 농어회는 90% 이상이 양식인데, 양식과 자연산은 회의 ‘때깔’부터 다르다. 양식은 대개 어두운 회색이나 갈색을 띠는데, 자연산은 밝은 갈색을 띠거나 불그스름하다. 특히 기름이 오른 겨울 농어회는 별미 중의 별미, 농어 스테이크의 경우에는 서양에서 고급 요리로 통한다. 그래서 이날 잡은 농어는 회와 스테이크로 동시에 즐겼다. 미식은 행복했지만 마음 한 편에는 아쉬움이 부글거렸다. 파도가 몸 부서져 죽는 저 포말 속, 바다의 뼈들이 물소리를 내는 수중여에 숨어 있을 ‘따오기’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녀석과 다시 한 번 진검승부를 펼치고 싶다. /이병철(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