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하 석

궁벽한 삶의 비탈에

추수 끝난 옥수수 대처럼 서서

마른 마음 펄럭인다

밭뙈기 아래 수척한 그늘이

강물에 비쳐 환하다

저건 누구의 상처이지?

강가에 흩어진 자갈들이 많이 으깨어져 있다

큰물 지나간 어수선한 자리

푸른 수심(水深)의 생각만으로

두리번거리는 사이

상처에 붙인 반창고처럼 풀들 우거진

아픈 자리마다 핀 가을꽃

눈부시게 수면에 얼굴 비춰본다

거기, 나를

따로 갓 쪽으로만 미는 물

모든 걸 비추면서 날 적시는 물

물음같이 울음같이 아픈

물, 그 오래된 동강이

길다랗게 내 몸 감돌아 흐른다.

시인이 써온 동강이라는 연작시 중의 한 편이다. 추수 끝난 쓸쓸한 늦가을 동강의 풍경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삶의 상처투성이를 안고 동강 가에 선 시인의 얼굴을 적시며 물음 같이 울음 같이 가슴을 적시며 유유히 흐르는 강가에서 삶의 질곡을 차오르는 서러움을 차가운 강물 속에 던져넣고 있음을 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