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가 죽은 후 오랜 슬럼프에 빠졌다가 겨우 몸을 일으킨 샤갈, 이후의 작품에는 주로 푸른 빛이 등장합니다.

이 시기를 샤갈의 푸른색(Chagall’s blues)라고 지칭하기도 합니다. 샤갈이 태어났을 때 고향 마을은 큰 불이 났습니다.

샤갈이 태어난 마을 전체가 한 시간 만에 불길에 휩싸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안전한 곳을 찾아 거리 여기저기로 요람을 들고 다녔지요. “어쩌면 이 때문에 항상 불안을 느끼며 방랑벽을 겪고 있는지 모릅니다.” 샤갈의 고백입니다. 평생 세상의 불길과 화염을 피해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피해다닌 노마드의 삶이었기에 샤갈은 더욱 본향을 그리워했습니다.

“만일 우리들이 부끄럼 없이 사랑이란 말을 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의 참다운 정신은 사랑에 있다”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피비린내 나는 숙청, 유대인으로 늘 직면했던 살해위협,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겪으며 인류가 저지를 수 있는 잔혹한 인간성 상실의 시대를 살았던 샤갈. 암울한 시대에 색채를 무기로 싸운 사랑의 투사였습니다. 샤갈의 언어 중 제 가슴을 찌른 말입니다.

“나의 태양이 밤에도 빛날 수 있다면 나는 색채에 물들어 잠을 자겠네.”

시대는 밤이었습니다. 대규모 학살이 버젓이 자행되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파리 죽이는 것보다 쉬웠던 시절.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 전혀 소망이 없을 듯한 암울한 세상을 살면서도 샤갈은 결코 꺾이지 않습니다. 짙은 밤처럼 어두운 시대, 그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색채에 물들어 자신의 태양을 빛내고 밝힌 등대였습니다.

누구는 총과 칼로 또 다른 누구는 지성으로, 그리고 세상은 돈과 권력으로 혁명을 꿈꾸지만 여기 사랑으로 인류의 내면에 불꽃을 피운 진정한 혁명가의 삶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따를만한 사랑의 깃발이 펄럭입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