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각사 극락전 어간문 사이로 바라본 산문 풍경. 묘각사는 영천시 자양면 용화길 499에 위치해 있다.

차는 영천댐을 끼고 달린다. 가끔 혼자서 찾아오던 길을 석 달 전 어미가 된 딸과 강보에 싸인 손녀가 동행중이다. 길은 한때의 화사함과 초록의 풍성함, 형형색색의 찬란함을 거친 후 차분히 스스로를 굽어보고 있다. 계절이 보내오는 완곡한 서두름들, 숨이 멎을 것 같던 풍경은 그 새 어디로 사라졌을까?

겨울이 지닌 섬세한 생명력과 사색이 주는 충만함에 젖어들기를 바라는데 딸은 불쑥 직장 이야기를 꺼낸다. 육아 휴직으로 업무가 늘어나버린 부서원에 대한 미안함과 복직 후 육아 문제와 일에 대한 부담감이 시나브로 그녀를 흔들고 있었나 보다. 아이의 사랑스러움에 빠져든 달콤한 시간 속으로 찾아온 뜻밖의 갈등과 고민들이 겨울 풍경을 앗아가 버린다.

한결 현실적이고 성숙해진 대화가 오간다. 잔잔한 수면 위로 장성한 자식의 든든함만큼 안쓰러움이 파도친다. 내 그릇의 크기만한 조언들을 주섬주섬 늘어놓다 습관적인 애착이란 걸 깨닫고, 바람 한 점 없는 수면 위로 빗나간 모성을 날려 보낸다. 잠시 말이 없다.

차는 댐과 작별하고 단풍도 가을걷이도 끝나버린 쓸쓸한 산길을 꾸역꾸역 오른다. 나무들은 알몸이 되어서도 자리를 뜨지 않고, 차가 달릴 때마다 길가에 쌓여 있던 낙엽들이 가볍게 몸을 들썩인다. 딸은 젊은 혈기가 불러올 무모한 과욕을, 나는 시나브로 찾아드는 노욕을 경계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나 보다.

신라 선덕여왕 때 의상조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도량 묘각사가 보인다. 절이 있는 산은 창건할 당시 동해 용왕이 의상대사에게 설법을 듣기 위해 말처럼 달려 왔다고 해서 기룡산으로 불린다. 대사가 법성게 일구를 설 하자 용왕이 묘한 깨달음을 얻어 곧바로 승천하여 감로의 비를 뿌렸으며, 이는 당시 관내의 오랜 가뭄을 해소하는 단비가 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사가 묘한 깨달음을 얻어 사찰이름을 묘각사라 하였다.

게다가 절의 부근은 예로부터 불보성지로 알려져 있다. 절의 뒷산은 보현보살이 머무른다는 보현산이며, 산 아래 동네는 미륵불의 용화삼회 설법을 상징하는 용화동에 이어 삼매동, 선원동 등 수많은 지명이 마치 불국정토를 칭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산문을 들어서기도 전에 마음이 평화롭다.

겹겹의 산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트인 시야를 막아주어 절은 아늑하면서도 시원하다. 일주문 없이 ㄷ자 건축물에 산문이 붙어 있는 독특한 건축양식은 단청이 없다면 여염집의 행랑채로 착각할 법하다. 전각의 문살들도 소박하고 단아하다. 온순한 눈빛의 백구 두 마리가 무료함을 달래며 길손을 맞는다.

우리는 서로의 생각에 빠져 경내를 둘러본다. 극락전 법당에 앉아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하고 싶었지만 아기가 칭얼대며 계획을 방해했다. 딸은 본능적으로 자기를 내려놓고 법당에 들어가는 일을 접고 아이를 어르며 산문을 나선다.

엄마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 다른 하나를 과감히 비울 줄 아는, 본능에 가까운 인내력을 발휘하는 딸아이의 모성이 짠하다. 그 마음을 알 턱이 없는 아이는 무엇이 불편한지 자꾸만 칭얼댄다. 아이 키우는 일은 숱한 노력과 인내의 연속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누구나 피해가고 싶어하는 것들과 대면하면서 우리는 성장하는지 모른다.

나는 극락전 법당에서 아미타부처님을 향해, 딸은 아이를 안고 묘각사 산문 앞을 서성이며 사색에 잠긴다. 숲은 한 순간도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숲이 열리는 소리, 한량없이 대지를 감싸 안은 하늘의 품을 올려다보며 딸은 무언가를 얻으리라. 그리고 무(無)를 향한 평온한 걸음에서 참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깨달을 것이다.

잠시 돌아앉아 열린 어간문 사이로 밖을 본다. 오후의 햇살이 내려 쬐는 산문 밖에 별천지가 보인다. 나와 딸, 그리고 어리석은 중생들의 번민과 사랑, 슬픔이 잉잉하게 차오르는 곳, 법당에 앉아서 바라보니 겹겹의 산 너머, 내가 사는 바로 그곳이 도솔천처럼 느껴진다. 묘하고 신통한 마음 잘만 다스리면 극락이 따로 없는데 등잔 밑이 어두웠던 것은 아닐까.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우리는 지혜를 바로 옆에 두고도 어둠 속을 헤매듯 방황할 때가 있다. 언젠가는 딸도 추억을 되짚으며 이곳을 찾아 번잡한 마음 내려놓고 스스로를 되짚어 볼지 모른다. 그런 날 묘각사의 이름처럼 소중한 깨달음 하나 얻고 갈 수 있다면 좋겠다. 산문 앞에 서서 하염없이 사바의 세계를 바라보고 서 있는 딸과 그 품에 안긴 손녀를 위해 저절로 두 손이 모아진다.

‘스스로 사랑하는 법과 침묵하는 법을 배우고,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힘이 들면 가까이 갈 수 있는, 빗장 열려진 곳을 향해 사다리를 내릴 줄 아는 지혜를 갖추게 해 주소서. 마주 잡아 주는 손이 있지만 행여 외롭다 방황할 땐 같은 쪽으로 부는 바람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시고, 아주 작은 것에 참다운 행복이 머물고 있음을 한 순간도 잊지 않게 해 주소서. 그리고 나 아닌 다른 이를 위해 기도할 줄 아는 넉넉한 사람이 되게 해 주소서.’

겨울햇살이 감미롭다. 차담을 요청한 주지 스님에게선 아무런 소식이 없고 삼대를 지켜보는 아미타부처님의 시선만 유난히 자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