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상상하기 싫지만, 버릇 나쁜 어린아이가 날카로운 면도칼을 들고 휘두르며 심하게 생떼를 쓴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쓸 수 있는 수단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달래고 꾀어서 칼을 내려놓게 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꾸짖으면서 힘으로 빼앗는 수단을 동원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빠르고 효과적일 수 있으나 위험성이 높다. 그렇다 보니 가능한 첫 번째 방법을 써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일단 더 순리적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한반도의 안보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연말까지’라며 일방적으로 협상 시한을 정한 북한이 모종의 도발프로그램을 획책하고 있는 징후가 뚜렷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을 향해 비핵화 협상 이후 사용을 중단했던 ‘로켓맨’이라는 조롱 호칭을 2년 만에 또다시 꺼내 들었다. 북한의 북미 협상 책임자인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담화를 통해 즉각 ‘늙다리 망녕(망령)’이라며 신랄하게 비난했다.

북한이 고체 연료를 쓰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엔진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분석이 나왔다.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에서 장거리 미사일 발사 준비 징후로 추정되는 상황이 미국 상업위성에 잡혔다는 것이다. 미국의 첨단 정찰기들이 한반도 주변을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다.

전문가들이 일제히 한반도의 상황을 ‘긴박하고 엄중하다’고 분석한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북한이 모종의 도발을 감행할 공산이 크다는 예측마저 나온다. 그런데도 외눈박이 평화론자들은 여전히 이 모든 정황을 ‘협상용’으로 해석한다. 남한을 향해 거듭되는 북한의 위협에도 “북한은 남한을 향해 절대로 핵무기를 쓰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를 알 수 없는 맹신을 방패막이로 내세운다. 김정은으로부터 그런 철석같은 약속을 받은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작금의 한반도 ‘긴장 고조’가 정말로 동트기 전 일시적인 어둠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만에 하나 북한 김정은이 수준 높은 교언영색 위장평화 전술로 핵무기와 ICBM 기술개발의 시간을 넉넉하게 확보한 것이라면 정말 큰 일이다. 한미를 비롯한 전 세계가 2년 동안이나 농락당한 셈이라면 어떻게 되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는 지난 9월 전문가 패널보고서에서 “북한이 함흥 미사일 공장 등에서 활발하게 고체 연료 생산과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신 차려야 한다. 우리 위정자들 누구도 ‘ICBM만 아니면 괜찮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에 대해 북한은 이미 가차 없는 ‘핵보유국’이고, 남한 전역은 핵미사일의 사정거리 안에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터무니없는 김정은의 ‘선의’와 미국의 ‘핵우산’만 믿고 온 국민을 어설픈 ‘한반도 평화’ 착시에 빠져 살게 할 참인가. ‘자체핵무장’ 필요성을 명확하게 말해야 할 시점이다. 미국은 철저하게 ‘미국’ 편일 따름이다. 아무리 살펴봐도 김정은은 ‘햇볕정책’ 따위의 유화책으로 달래고 꾄다고 말을 들을 철부지가 아닌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