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무렵 서울에 처음 올라와서 가장 버겁게 느껴졌던 것 하나가 계단이었다. 국문학과가 있는 1동 계단은 그런 대로 견딜 만 했다. 정말 적응하기 힘든 것은 도서관 쪽 5,6층 사이 계단이었다. 열람실을 이용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곳이었다.

처음에 생각하기로는 설계가 잘못된 게 아닌가 했다. 나라마다 각각 사람의 체형에 맞는 계단 높이라는 게 있다. 혹시 설계자가 한국사람 키높이를 몰랐던 게 아닐까?

달리, 혹시 뭔가 장중한 느낌을 주기 위해 일부러 한 계단 높이를 약간 높게 설계한 것은 아닌가 하고도 생각했다. 1975년에 완공되었다는 이 한 세트의 건물들은 모두 고동색 빛깔이었고 도서관을 제외하고는 한결같이 4층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관료적인 인상을 주는 외관이다. 계단 높이도 이런 장중함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였던 것일까? 이 의도된 장중함은 이 학교의 ‘센터’에 해당하는 사각 스퀘어를 통해서도 발현되고 있었다. 이 사각 스퀘어를 둘러싸고 행정관, 도서관이 위아래로 마주 보고, 다시 학생회관과 인문대학의 1동이 양 옆으로 마주 보며 서 있었다. 이 사각의 공간은 대학의 중핵 기관이 행정관과 도서관이라는, 또 학생회관과 인문대학이 대학의 정신을 상징한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

단지 학교 도서관 계단만은 아니었다. 그 무렵 내가 겪은 서울의 계단들은 늘 어딘지 모르게 높아서 올라 딛기 불편했다. 그후 서울은 어딜 가나 지하철 계단으로 넘쳐나는 도시가 되었다. 이 지하철 계단들은 어른도 내딛기 어렵게 느껴졌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진 육교 계단도 마찬가지였다.

생각해 본다. 정말 서울의 계단들이 그러했던 것일까? 아니면 혹시 서울이라는 적응하기 힘든 세상에 대한 나의 위화감이 작용한 심리적 반응이었던 것일까?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 산 대전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 계단이라는 것이 대전에는 없었던 것도 같다. 요즘 아침저녁으로 지하 6층 깊은 곳에 플랫폼이 있는 독바위역을 드나들어야 한다. 꼭 한 층만은 에스컬레이터를 운행하지 않는단다. 절전 때문일 것이다. 늦은 밤 지친 몸으로 계단을 올라가야 할 때면 불편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이제는 계단에 대해 더는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나이가 되었는지도 모르건만, 나는 지금도 서울의 계단이란 불편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고 투덜거리곤 한다. 어쩔 수 없이, 운동 삼아 오르내리며, 심술을 부려본다. 계단을 보면 차라리 고마워해야 한다던 운동 권유자의 말도 별로 듣기에 좋지는 않다고 말이다.

계단은 있는 것보다 없는 쪽이 좋다. 물성을 갖춘 진짜 계단 말고도 모든 사회적 계단도 말이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