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구종직이라는 말단 관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경회루의 경치가 아름다워 몰래 궁중에 숨어들었습니다. 그때 마침 임금의 거동이 있었습니다. 구종직은 급히 도망치려 했지만 담을 뛰어넘어야 할 형편이어서 어쩔 수 없이 길을 비켜 엎드려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임금이 묻습니다.

“누구이기에 여기까지 들어왔느냐?”

구종직이 우물쭈물하자, 임금이 갑자기 질문합니다.

“여차여차한 문장을 아느냐?”

“네. 알고 있는 줄 아뢰오.”

“그럼 한 번 들어보자.”

구종직은 평소에 글 읽기를 좋아하는지라 문장이 술술 나왔습니다. 가상히 여긴 임금은 정9품 말단 관리였던 그에게 종5품 벼슬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구종직이 순식간에 벼슬에 오른 이 사건을 안 신하들은 불평이 많았습니다. 임금은 신하들을 불러 구종직에게 물었던 그 문장을 외게 했으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구종직을 발탁해 벼슬로 임용한 임금은 세종대왕입니다. 세종이 물었던 질문은 ‘춘추’였고 구종직은 세종 앞에서 춘추 한 권을 모조리 암송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늘 인재에 목말라했던 세종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또 언제 기회가 찾아올지 모르는 중에도 부지런히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던 구종직의 태도도 놀랍습니다. 그 후 구종직은 세조, 성종 시대를 거치면서 자신의 배움을 마음껏 발휘해 국가를 위해 봉사합니다. 1466년에는 공조참판에 이르고 자헌대부까지 올랐습니다. 문장이 뛰어나고 역학, 경학에 밝았지요.

엘빈 토플러는 말합니다. “21세기 문맹은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더 이상 배우기를 멈춘 사람이다.” 인공지능이전방위적으로 사람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배움에 열려 있는 누군가에게는 무궁무진한 기회의 땅이기도 합니다. 다가오는 2020년에는 어떤 배움의 즐거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