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어느덧 12월,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매듭달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듯한 올해도 또 한 겹 연륜(年輪)의 테를 남기며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다. 가을에서 겨울로, 기해년에서 경자년으로 시간의 바톤을 이어가며 서서히 세월의 바퀴를 굴려가고 있다.

세모(歲暮)의 언저리에 서면 만감이 교차한다. 연초에 다짐했던 계획이나 목표를 어느 정도 실행하고 이뤘는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신뢰와 관계는 어땠는지, 고난과 예기치 못한 일들에 직면해서는 어떻게 참고 극복해냈는지, 실로 끊임없이 희비의 쌍곡선이 그려지고 행, 불운의 갈피가 아스라하게 펼쳐지는 듯하다.

설레임과 기대로 맞이한 새해의 숱한 나날 동안 별반 이뤄놓은 일도 없이 그냥 보내야 한다면 아쉽고 허전하기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있어서 무위(無爲)한 날은 단 하루도 없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하루를 나름의 방식과 내용으로 시간을 채워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돋보이거나 괄목할만한 일이 아닐지라도 매 순간은 개개인 생활의 단면이고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다만, 하루 한달 한해를 보내면서 개인이건 조직이건 가시적인 성과나 목표 달성의 정도에 따라 보람과 희열의 체감도가 다르게 나타남은 보편적인 느낌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사람들이 애써 노력하고 이룩한 결과물이 업적이 되고 내공과 지혜가 더해지면서 사회의 진보와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하는 바탕이 되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래서 세월은 무심치 않아 연륜을 쌓고, 인생은 덧없지 않아 경륜을 낳는다고 했던가?

12월은 한해를 매듭하기도 하지만 새해를 준비하는 달이기도 하다. 지나 온 날들에 대한 성찰과 미진함에 대한 점검으로 새로운 날들의 포부와 희망을 가늠해보는 때다.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의 충실함을 일구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개인적으로도 비슷한 이치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맘 때가 되면 망년회니 송년회니 모임을 하면서 한 해 동안의 괴로움이나 근심 걱정을 지는 해와 함께 잊고 묻어버리면서, 좀 더 밝고 희망찬 날들을 기약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하루하루 숨가쁘게 살아온 날들에 대한 수고와 감사의 마음으로 주위에 온정을 베풀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침잠의 동안거(冬安居)에 들어가 자신을 위무하며 명상과 관조의 세계에 접어들기도 한다. 그렇게 켜켜이 쌓여가는 시간들 속에서 사람들은 한 겹 한 겹 나이테를 더해 가듯이 관록을 채워가며 성장과 농밀함을 더해간다.

무슨 일이든지 끝이 좋아야 시작과 과정을 넉넉하게 웃으며 되돌아 볼 수 있다. 물론, 시작이 반이고,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자체도 중요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결말이 빈약하다거나 흠결이 생기면, 결국 아쉽고 안타깝거나 오점으로 남는 일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숱하게 접해 왔다. 기해년 수묵빛 세월의 여울목에서, 한 달 남짓 남은 올해지만 끝까지 잘 갈무리하여 보다 꿈이 밝고 푸른 의미있는 내년을 준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