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의 방황 끝에 깨달음을 얻습니다. “두 손으로 연주할 수 있느냐보다 음악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돌아온 레온 플라이셔는 챔버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고 지휘를 시작하는 한편, 왼손으로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합니다.

그가 도전한 왼손을 위한 솔로 작품과 라벨, 프로코피에프 협주곡을 녹음한 소니 클래식 레코드는 아카데미상 후보로 지명되기에 이르는 호평을 받습니다.

왼손으로 연주회를 거듭 하면서, 레온 플라이셔는 결코 오른손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수술에 실패했지만, 끝까지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을 내려놓지 않지요. 오른손을 위해서라면 어떤 노력도 마다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보입니다.

1990년 정확한 진단을 얻는 데 성공합니다. 국소적 근육긴장이상증(focal task-specific dystonia) FTSD라는 것을 알아낸 겁니다.

뒤틀린 넷째 다섯째 손가락에 보톡스를 주사하는 요법으로 치료합니다. 롤핑을 병행하면서 경직된 근육이 한결 유연해집니다.

30년 만에 레온 플라이셔는 다시 두 손의 피아니스트로 돌아옵니다. 10년 활동 끝에 2004년, 새 음반 ‘투 핸즈 Two Hands’를 세상에 내 놓습니다.

바흐와 스카를라티의 소나타, 드뷔시의 달빛(Clair de lune), 쇼팽의 녹턴, 슈베르트의 소나타 D.960.

이런 주옥같은 곡들을 담은 이 앨범은 젊은 날 당당한 터치 대신 깊은 연륜과 예술 혼으로 악보 행간에 숨어 있던 작곡가들의 수많은 이야기를 세상에 풀어냅니다.

안젤라 데이비스는 말합니다. “벽을 밀치면 문(door)이 되고 벽을 눕히면 다리(bridge)가 된다.” 벽을 밀쳐 문을 만들어 내고, 장벽을 눕혀 다리를 건넌 레온 플라이셔의 삶. 그 자체가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 아닐까요?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