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질바위 아래 자리 잡은 도봉사. 도봉사는 경북 칠곡군 석적읍 유학로 785-66에 위치해 있다.

유학산은 옛날 학이 놀던 명산이다. 병풍처럼 깎아지른 절벽은 학바위라고도 하고 어른 키의 50길이나 된다하여 쉰질바위로도 불린다. 그 아래 도봉사가 가파른 지형에 아담하게 터를 잡고 앉아 있다. 그 비탈진 곳에 대웅전을 비롯하여 여러 채의 전각과 탑까지 빠짐없이 갖추고 있다.

눈을 부라리며 절 입구를 지키는 금강역사보다 더 먼저 마중을 나오는 관세음보살 염불 소리, 숙연할 정도로 차분하다. 천년고찰도 아니고 보물급 유물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도봉사를 찾는 이는 많다. 기암괴석을 뒤로 하고 앞으로는 툭 트인 경관을 찾아오는 등산객과 6.25 전쟁 격전지 순례 답사 코스이기 때문이다.

도봉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신라의 고찰 천수사의 옛 터에 1962년 건립되었다. 험준한 지형과 치열했던 전투가 주는 남성적 이미지 때문이었을까. 비구니 스님이 맞아 주셔서 내심 놀랐다. 도봉사의 속살은 여성적인 정겨움이 곳곳에 숨어 있다. 기왓장에 심어놓은 야생화와 다육이, 거친 암벽을 아름답게 장식할 덩굴식물, 부지런히 경내를 청소하는 스님 두 분의 세심함까지.

서운 주지 스님께서 커피를 건네신다. 편안하고 따뜻한 고성(古城)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당시만 해도 약자인 여성으로서 발심 출가한 것도, 해발 700m 고지의 험준한 절을 선택한 것도 놀랍고 존경스럽다. 개인적인 질문을 하고 싶은 걸 꾹꾹 눌러 담고 도봉사 이야기를 듣는다.

겨울에는 눈이 많이 와 교통이 두절되기도 하는, 결코 만만치 않은 절 살림을 서운 스님은 여성다운 부드러움과 노련함으로 잘 해내시는 것 같다. 구중을 떠돌던 원혼들도 비구니 스님의 염불 소리에 한결 안정감을 느끼리라. 도봉사와 스님의 하루를 여는 새벽예불은 아마도 젊은 원혼들의 넋을 위한 기도로 시작되지 않을까.

부자가 많다는 다부동(多富洞)이나 학이 노닌다는 유학산(遊鶴山)이란 지명에 어울리지 않게 아픔이 서린 곳, 아름다운 풍광만큼 6.25때 격전지로 유명했던 이야기를 스님은 자세히 들려주신다. 슬픔은 언제나 묵직해서 듣는 이의 가슴을 여미게 한다. 주지 스님과 차담을 나누는 동안에도 관세음보살 독송은 쉬지 않고 허공을 울린다.

가파른 지형 때문에 긴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은 당연하다. 수량이 풍부하지는 않지만 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지금도 용왕단의 물을 신성하게 여겨 아침마다 법당에 올린다. 하지만 퍼내도 끝없이 쌀이 나오는 구멍을 욕심 많은 이가 파낸 후 그곳에서 빈대가 나와 빈대절이라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은 그 가난조차 애잔한 추억거리에 지나지 않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과거사다. 끔찍한 전쟁의 비극, 물질만큼 평화를 간절히 원하던 시기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지금 누리는 경제적인 풍요와 여유, 그 밑거름이 된 숭고한 희생들을 생각한다면 좀 더 겸허해지고 좀 더 진중해야 하리라. 모처럼 대웅전 법당에서 내가 아닌 젖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한다. 나와 내면이 훨씬 더 잘 보인다.

도봉사 뒤 가파른 암벽을 타고 오르는 덩굴식물이 궁금하다. 억척스럽고 투박한 줄기가 고지를 탈환하려는 젊은 병사의 생사에 놓인 몸부림 같다. 그에게 여유와 잉여는 없다. 오직 살기 위한 치열성과 숨 막히는 순간만 존재했을 뿐이다. 능소화라고 하신다. 여름이면 우리의 시선보다 높은 곳에서 화사하게 눈길을 끌던, 왕을 흠모하는 어느 궁녀의 슬픈 전설을 담고 있는, 명예와 그리움이라는 꽃말을 가진 꽃이다.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여름 날 도봉사를 화사하게 물들일 능소화를 상상한다. 청춘을 바친 호국장병의 넋들이 능소화로 피어나 도봉사는 온통 꽃 멀미로 몸살을 앓으리라. 못다 이룬 꿈들은 어사화란 또 다른 명칭으로 최상의 명예를 얻었지만 그 아픔은 어찌할 수가 없다. 쉰질바위를 훈장처럼 눈부시게 밝히다, 그 해 팔구 월의 절박함에 목이 졸리듯 통꽃으로 뚝뚝 떨어지며 ‘나를 잊지 마세요’ 한 마디를 남길 것만 같다.

하늘을 업신여길 정도로 끝없이 위로 향하는 능소화, 헤어지고 떠나온 부모형제와 산천이 그리워 자꾸만 높은 쪽으로 향하는가? 꽃도 잎도 지고, 앙상한 줄기 홀로 오늘도 암벽을 탄다. 간신히 뻗어나가는 저 목마른 감각들, 신전처럼 버티고 서 있는 쉰질 바위, 오로지 바위만 의지하고 나아가는 뜨거운 혈류와도 같은 생명 앞에서 나는 가만히 두 손을 모은다.

절벽 아래 잘려나간 느티나무 줄기 위에 동자상 하나 평화롭다. 전쟁은 인간과 문명 자체를 위협하는 가장 비극적인 일이다. 행여 나는 지금 누리는 행복과 나눔을 국한시키지는 않았는가. 물질적 안락함에 빠져 더 높은 가치와 이상을 추구하는 일에 소홀하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도봉사를 빠져나오며 다시 한번 아픈 영혼을 위해 기도한다.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지지 않기를 바라며. 천천히 839고지를 오른다. 크게 분노할 일도 특별히 기뻐할 일도 없는 내게 염불소리가 친구가 되어 한참을 함께 걷는다.

그 길은 마치 성소를 찾아가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