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 여섯 살 때 공개 연주회를 할 정도로 신동 소리를 듣는 천재가 있습니다. 열 살에 유럽으로 건너가 아르투르 슈나벨(Artur Schnabel)에게 사사합니다.

스승은 콧대 높기로 유명한 지휘자 조지 셀(George Szell)을 이탈리아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그는 솔로 연주자들과 협연을 절대 하지 않고 오직 오케스트라 음악만 지휘하기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스승은 제자에게 슬쩍 연주를 한번 해 보라고 말합니다. 소년의 신들린 듯한 연주 솜씨를 한눈에 알아본 조지 셀은 자존심 다 내려놓고 이 소년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자고 제안하지요.

소년의 이름은 레온 플라이셔(Leon Fleisher 1928∼)입니다. 열여섯 살 레온 플라이셔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메이저 무대로 등극합니다. 열여덟 살이 되기 전 카네기 홀에서 두 번이나 공연을 하는 기염을 토하지요. 1952년에는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미국인 최초로 우승하는 영예를 얻기도 합니다. 미국 클래식 연주자가 국제 콩쿠르 사상 처음으로 세계를 제패한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플라이셔는 31세의 나이로 피바디 음악원의 교수가 됩니다. 그는 미국의 자랑이자 세계를 뒤흔드는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우뚝 섭니다.

문제가 발생합니다. 34세 레온 플라이셔는 연주 도중 오른 손가락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느낍니다. 넷째와 다섯째 손가락에 힘이 전달되지 않지요. 증상은 점점 악화돼 두 손가락이 말려들기 시작합니다. 결국, 피눈물을 뿌리며 그토록 사랑하던 무대를 떠나게 됩니다.

음악이 삶 전부였던 그는 깊은 좌절에 빠져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합니다. 결국, 아내까지 그의 곁을 떠나 이혼하게 되죠. 한 줄기 빛도 없이 캄캄한 흑암 속으로 인생이 순식간에 굴러 떨어집니다. (계속)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