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 트렌드’ 요즘 송년회

주 52시간근무제 시행과 함께 워라밸(Work-life balance) 문화가 일상 전반을 아우르는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직장 내 회식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삼겹살에 소주를 들이켜던 고전적인 회식이 줄어들고, 식사 중심으로 자리를 끝내거나 공연 관람, 볼링, 스크린 야구·사격과 같은 다양한 활동이 중심이 되는 회식문화를 선호하는 분위기다.

회식문화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2017년부터다. 지난 2016년 11월 부정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접대와 함께 회식 횟수도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회식을 하더라도 1차로 끝내는 문화가 자리잡는 계기가 됐다. ‘회식은 1차에서 1가지 술로 밤 9시까지만 한다’는 ‘119원칙’도 새로 등장했다. 식비가 1인당 3만원으로 제한되면서 저녁 자리가 2·3차로 이어지는 모습도 점점 자취를 감췄다.

포항시 북구 양덕동에서 일식 주점을 운영하는 A씨는 “평일 저녁에 술을 주문하는 직장인 단체손님이 감소하면서 이전에는 음식과 주류의 판매 비율이 5대 5였다면 지금은 거의 8대 2로 주류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회식의 종착지’로 불리던 노래방도 수명을 다하고 있다. 김영란법에 이어 주 52시간 근무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까지 잇따라 도입되면서 직장 회식문화가 빠르게 바뀌고 있는 탓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지난 7월 발표한 ‘노래방 현황 및 시장여건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노래방 수는 지난 2016년 이후 3년 연속 내리막을 걷고 있다. 지난해 새로 문을 연 노래방은 766개로 폐업한 노래방(1천413개)의 절반 정도였다. 이는 1991년 노래방이 생긴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갈수록 노래방 시장이 쪼그라들고 있다는 의미다.

회식 코스에서 노래방이 사라진 자리를 스크린 야구·당구와 같은 실내스포츠 활동으로 직장인들은 메우고 있다. 포항시 남구의 한 스크린야구장 관계자는 “연말이 다가오면서 직장인 단체손님이 급증하는 추세”라며 “업무 스트레스와 피로를 해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팀을 나눠 내기를 하는 동안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져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20대 직장인 한소연(대구 동구) 씨도 “술만 마시는 회식은 다음날 숙취만 남지만 동료들과 같이 영화를 보거나 볼링을 치고 나면 서로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며 “여직원끼리는 따로 모여서 호텔을 예약해 송년 파티를 열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저녁 대신 점심때 송년회를 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청년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지역의 한 기업체는 다음달 금요일 점심에 송년회를 연다. 지난해까지 저녁에 모임을 했지만 가뜩이나 연말에 약속이 많고 시간대가 부담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 모일 수 있는 점심에 열기로 했다. 술을 강권하는 회식을 거부하는 20∼30대 직원이 늘었고, 주 52시간 근로제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올해는 경기침체와 업황 부진으로 송년회를 신년회로 대체하거나 내년 송년회를 기약하는 곳도 적지 않다. 증권사에 다니는 30대 직원 신모(포항시 남구 효자동)씨는 “올 한 해 증시가 지지부진한 탓에 실적이 좋지 않아 연말 분위기가 안 난다”면서 “지난해 이맘때에는 이미 송년회 날짜와 장소가 잡혔었는데 올해는 아직 결정된 사항이 없다. 다른 지점에서는 송년회를 하지 않고 봉사활동을 간다고 한다”고 전했다.

/김민정기자 mjkim@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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