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절미, 나도 자연인이 되고 싶다. 나도 고향 예산 덕산 가까운 산골에 들어가 계곡물로 세수를 하고 더덕을 캐고 버섯을 따고 뜨는 해 지는 해 보며 황토방 오두막에서 자고 싶다.

텔레비전은 지난 십 년 동안 아예 담을 쌓고 지내다시피 했다. 뉴스라는 건 이쪽 저쪽 다 어찌나 잘 ‘만드는지’ 진실 쪼가리 캐는 데 지칠 대로 지쳤는데 요즘에는 유튜브도 범람 지경이 되어 이상한 좌우 자처하는 세력들의 ‘손님끌이’ 장사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며칠 전 경향신문 11월 21일자 1면에 오늘도 세 사람이 퇴근하지 못했다고, 신문 전면을 하단 광고도 없이 산재로 희생된 사람 이름만 빼곡히 적어 놓은 것을 보고 아직도 세상이 변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변하지 않은 게 어찌 노동문제뿐일까. 조국 사태는 좌우가 공수를 뒤바꾸어도 세상이 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권력을 가지면 그것을 지렛대 삼아 어떻게든 해보고 싶은 것이 사람의 생리라고 생각된다. 그게 없어지면 갑자기 정의로운 체 하는 것도 사람의 체질 가운데 하나인지도 모른다. 나 자신이 이 생물 그룹의 구성원임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그렇게 쓸모 없어 보이던 텔레비전 화면이 갑자기 환하게 빛이 난다. 이승윤, 윤택 두 개그맨이 방방곡곡 숨어사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데, 이쪽을 돌려도 자연인 재방송이요, 저쪽을 돌려도 자연인 재방송이다. 뭐랄까, 자연인 신드롬이라 할까. 요즘 남자들 로망이 ‘나도 자연인이다’란다.

산속에서 손수 밭을 갈고 산약초를 캐고 한 끼 밥을 손수 지어먹는 ‘풍경’이 그렇게 귀해 보일 수 없다.

악병에 걸린 사람도 깊은 산중에 들어가면 생명이 되살아나고 부도가 나고 사람살이에 지칠 대로 지친 사람도 산속에 들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바로 아래 동생이 마음이 좀 나아져 자주 연락을 한다. 십 년 전 대장에 암이 생겨 죽을 고생을 한 동생이다. 삼형제 중 내가 장남이고, 셋째도 서울에 사는데, 이 친구만 대전 부모님 곁에 지내며 내가 치러야 할 고생을 했다. 참 미안하고 염치가 없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
방민호 서울대 교수

유튜브에서 시골 집을 하나 봐둔 게 있다 했다. 한번 가보자 해서 서로 못한 이야기도 나눌 겸 같이 갔다 대실망을 하고 근처 절에서 맛있는 절밥만 먹고 돌아왔다.

동생은 요즘 자연인이 되고 싶은 모양이지만 돈은 잘 못 벌어도 응급의다. 큰 병원 삼십 분 안에는 도착할 수 있어야 한단다. 나는 그게 대수냐고 응수한다. 마음 속에 ‘자연인’에서 본 산의 놀라운 치유력을 품고 말이다.

나도 자연인이 되고 싶다. 너무 오래 ‘좌연인’ 하며 살았다. 산속으로 돌아가 세속 사람 때를 벗겨내고 싶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