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허가 축사 적법화 골머리에
퇴비 부숙도 검사 의무화 예정
부적합판정 땐 과태료 부과 등
내년부터 실시 앞서 혼란 가중
농민들 “제도 시행 유예 필요”

국내 축산 농가들이 또 비탈에 서게 됐다. 무허가축사의 적법화 추진에 맞추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는 데 이어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다. 내년부터 실시되는 ‘퇴비 부숙도 검사 의무화’가 그것이다. 축산 농가들은 대체로 ‘산 넘어 산’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파장이 마무리되지 않은 데다 WTO 개도국 지위 포기로 심리적인 압박을 받는 등 이래저래 축산농가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퇴비 부숙도 검사 의무화’는 ‘가축분뇨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내년 3월 25일부터 가축을 사육하는 모든 축산 농가에서 의무적으로 퇴비 부숙도 검사를 해야 한다. 퇴비를 잘 삭혀 내놓으라는 것이다. 악취발생을 막고, 퇴비품질을 높여 땅심도 살리는 친환경축산농을 육성하려는 취지다. 축사규모 1천500㎡ 이상은 부숙후기 또는 부숙완료, 1천500㎡ 미만은 부숙중기 이상의 퇴비만을 살포해야 한다. 허가규모 축산 농가는 6개월에 1번, 신고규모는 1년에 1번의 퇴비 부숙도 검사 후 그 결과를 3년간 보관해야 한다. 퇴비와 액비 관리대장도 빠짐없이 기록하고 관련 자료를 3년간 보관해야 한다.

농민들은 관련 교육을 받는 한편 퇴비사 규모 확충이나 교반장비 구입 등 투자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제도가 시행되면 퇴비 관리대장에 가축 분뇨의 처리 일자별로 생산량, 처리량, 살포내역 등을 기재해야 한다. 퇴비 관리대장 미작성 농가는 1차 50만원, 2차 70만원, 3차 100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부숙도 검사에서 부적합이 나오면 신고와 허가 규모에 따라 최대 200만원까지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이에 정부와 자치단체에선 가축분뇨 퇴비 부숙도 기준 시행에 대비해 검사기관과 함께 준비 상황을 점검하고 제도시행 관련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농가의 혼선이 우려돼 농가에 퇴비 부숙도 준수를 홍보하는 한편 농가 컨설팅도 진행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퇴비유통전문조직을 구성안을 내놨다. 축산농가 60호 이상의 참여가 필요하고 퇴비 살포지 200㏊ 이상을 확보하면 사업비 2억원 기준, 국비 30%, 지방비 50%를 지원한다는 것. 경북도도 올해 40억원을 투입해 퇴비를 섞어주는 장비인 스키드로더 133대를 지원했다. 특히 법이 시행되는 내년에는 이보다 34%가량 늘어난 50억원을 들여 178대를 농가에 보급할 예정이다.

반면 축산 농가들은 무허가 축사 적법화처럼 정부와 농가 모두가 준비가 부족한 상태라며 의무화 조치 시행 연기를 요구하고 있다. 가축별로 퇴비부숙도가 차이가 나는데도 이에 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안동에서 축사를 운영하고 있는 권용민(62)씨는 “현재 부숙을 위한 시설과 장비 등을 제대로 준비돼 있지 않아 이를 강행하면 극심한 혼란이 예상된다”며 “충분한 준비가 될 때까지 제도 시행을 유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수년째 추진해온 무허가축사 적법화도 꼬일 대로 꼬여 여전히 적법화 완료율이 낮은 상태를 예로 들고 있다. 지난달 11일 기준 경북 도내 무허가 축사를 가진 농가 가운데 이행 기간을 부여받은 농가는 7천264곳(전국 대비 22.6%)으로 이 중 적법화를 마친 농가는 3천664곳으로 적법화율이 50.4%에 머물고 있다. 설계도면 계약 및 작성, 인허가 접수 등 적법화를 진행 중인 농가는 2천365곳(32.6%)이다. 그나마 이행강제금을 납부한 농가는 506곳(7%). 이들을 모두 포함해야만 ‘적법화 진행률’이 93.1%에 이른다.

지역의 한 축산 관계자는 “농가들이 정책을 따르려면 어느 정도의 대책과 지원이 뒤따라 줘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만 하는 것이 문제”라며 “정부가 의도하는 제도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농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병현기자why@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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