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춘희 종합자산관리사

마트에서 물건을 산 후 휴대폰 페이로 결제한다.

“잔액 부족입니다”

“잠시만요”

결제 수단을 신용카드로 한 단계 올린다. 처음 카운터에서 잔액 부족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너무 부끄러워 캐셔에게 체크카드라서 그렇다며 허둥지둥 손사래를 치곤 했다. 아는 사람이라도 주위에 있으면 어쩌나 마음도 졸였다. 이제는 당황하지 않는다. 마일리지 적립이라는 달콤한 보상으로 신용카드를 긁게 만드는 유혹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대신 한도가 분명한 체크카드로 지출을 조절하며 통장이 부디 월급날 전에 바닥을 드러내지 않도록 기대할 뿐이다.

25일 새벽, 반가운 급여 문자가 들어온다. 설렘도 잠시, 통장 나누기에 들어간다. 자동 이체 이외의 고정 항목을 하나씩 직접 송금하는 과정에서 급여가 만드는 대단한 위력을 실감한다. 동시에 공중으로 사라지는 지출과 차곡차곡 쌓이는 자산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종합자산관리사 일을 하면서 다양한 재무관리 현장을 본다. 수입이 많지만 소비를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나 신용카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매달 악순환을 거듭하는 사람도 있다. 나 또한 갑자기 늘어난 씀씀이에 오랜 세월 동안 어려움이 많았었다. 진작 통장 나누기를 실천해 지출과 자산 만들기를 차근차근 해왔더라면 지금쯤 꽤 괜찮은 종잣돈을 마련해 자산을 굴리고 있을텐데, 당시에는 번거롭다고 생각했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말했다. “세상에서 죽음과 세금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누구도 돈을 관리하는 인생의 책무를 피해갈 수 없다. 평생 돈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불편한 동거보다 확실한 친구로 삼는 것은 어떨까? 그 첫걸음으로 통장 나누기를 제안한다. 통장을 급여통장(고정지출), 예비비통장, 소비통장으로 세 개로 나눈다. 체크카드는 소비통장과 연결한다.

25일에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띵똥” 월급이 들어오는 소리다. 이날 예비비통장으로 급여의 5∼10% 범위에서 정한 금액을 이체한다. 여기에서는 1년 단위로 지불하는 자동차 보험, 자동차세, 재산세 등 세금과 비정기적으로 발생하는 경조사 비용을 모은다. 고정지출, 소비 지출에서 절약한 돈도 이곳으로 이체해 종잣돈 굴리기 재원을 만든다. 부작용도 물론 있다. 예비비통장에 보관한 현금 유혹에 한두 달은 분명 시행착오가 생기게 마련이다.

소비통장은 지난 3개월간 지출 평균 금액을 입금해 두고, 체크카드를 연결한다. 생활비, 식비, 피복비, 문화비, 유류대, 기타 잡비를 위한 통장이다. 카드 지출 내역을 2개월만 뽑아보면 매월 평균 지출 금액과 내 ‘방앗간(소비패턴)’이 어딘지 파악할 수 있다. 커피를 많이 마시는지, 외식을 많이 하는지, 계절마다 기분전환을 위해 옷을 얼마나 사는지. 자기계발에 한창인 사람은 책 구매 실적을, 사람이 우선인 경우는 아마 각종 술집 계산서를 금액을 확인할 수 있다. 소비는 생활 습관이기에 갑자기 줄이기 어렵다. 커피를 줄였더니 스트레스로 가을 코트에 지름신이 내리고, 술을 줄여보겠다고 애썼더니 억눌린 소비심리 때문에 더 큰 일을 터트린다. 무리하게 소비를 막으려 하지 않고 불필요한 소비를 조금씩 줄여나가야 한다. 월 5만 원이라도 지출 흑자를 기록한다면 대단한 일이다. 이 귀한 돈은 그대로 이월하지 않고 다음 달 급여가 들어오기 전 예비비통장으로 신분을 상승시켜 보낸다.

마지막 작업은 급여통장에서 나가는 고정지출을 정비하는 일이다. 기부금, 관리비, 보험료, 대출이자, 용돈, 통신요금, 자기계발비, 곗돈, 운동 등 매월 선택의 여지 없이 나가는 고정비다. 기존 출금 통장을 확인해 이체 날짜를 급여 이후로 조정하고 다른 통장에서 이체되는 고정비는 급여통장으로 일원화한다.

여기까지 정비하는 과정을 통해 통장 나누기를 완성하면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몇 달 치 카드내역서를 읽고 몇 개의 통장을 확인하며 야무지게 잘살고 있는 나를 만날 수도, 지금까지 버텨온 대견한 나를 만났을 수도 있다. 이런 간단한 방법으로 내 급여의 행방을 확인하는 자체로 의미가 있고, 분명해진 지출 패턴을 인지하고 예비비 마련까지 가능하다. 이제 신용카드의 굴레에서 벗어나 내 돈의 주인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