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춘추시대 ‘장공’이라는 제(齊)나라 왕족이 사냥터에 가고 있었다. 길을 오가는 사람들은 모두 왕족의 행차에 무례를 저지르지 않으려고 길가에 멀찌감치 물러섰는데, 웬 낯선 벌레 한 마리가 길 한가운데에서 앞발을 치켜들고 수레바퀴를 칠 듯이 덤벼들었다. 사마귀였다. 장공은 “저 벌레가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용감한 장군이었을 것”이라면서 사마귀를 피해 가게 했다.

‘사마귀가 앞발을 쳐들고 수레를 막는다’라는 뜻의 ‘당랑거철(螳螂拒轍)’ 고사다.

국제사회의 변화와 상식을 거부한 채 외톨이 길을 가고 있는 북한의 존재 방식을 놓고 사람들은 당랑거철을 떠올린다. 한미동맹이라는 형태의 편짜기 지혜로 놀라운 번영을 이룬 한국이 미국의 변심으로 곤혹스러운 번뇌 국면에 접어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방위비 분담금을 5배나 올리자고 제안하면서 전천후압박을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 김정은은 눈도 깜짝하지 않는 자세를 줄기차게 견지하고 있다. 우리가 소원하는 ‘북한 비핵화’는 단 1㎜도 움직이지 않았다. 며칠 전 생방송으로 진행한 타운홀 미팅에서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는 제가 보람을 많이 느끼고 있는 분야”라고 표현해 국민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도대체 뭐를 얼마나 이뤘다고 보람을 느낀다는 것인지.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한 혐의로 탈북 어민 2명을 우리 정부가 강제북송한 사건에 대한 여파가 길다. 북한인권탈북단체총연합 등 국내외 30여 인권단체가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을 비롯한 고위 관계자 4명을 ICC(국제형사재판소)에 고소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의 강제북송 조치는 헌법과 대법원 판례, 국제법에 정면으로 어긋난다는 비판이 많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초청 친서를 보낸 날짜가 11월 5일이라고 북한이 공개했다. 바로 그날이 정부가 동해로 넘어온 탈북 어민 2명을 추방하겠다고 북에 서면으로 통보한 날이란다.

‘김정은 초청장’에 ‘어민 북송문’을 선물꾸러미로 동봉한 셈이라는 의혹과 논란이 증폭 일로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문재인 정권은 북한과 잘해보려고 ‘평화’ 도박에 ‘짝사랑’을 몽땅 걸었다. 북한은 “(문 대통령) 친서 이후에도 (남측은) 몇 차례나 특사 방문을 허락해달라고 청했다”고 까발렸다. “반성과 죄스러운 마음으로 삼고초려(三顧草廬)해도 모자랄 판국” 운운하며 아랫사람에게 훈계하듯 하는 그들의 패악질은 우리 국민의 자존심을 사정없이 짓밟는다.

미국은 변했다. 이제는 미국이 우리를 여전히 짝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북한을 계속 짝사랑하는 것은 더 위험하다. 이 판에 북한을 따라 하듯이, ‘미군 철수’ 피켓을 들고 당랑거사(螳螂居士 사마귀) 놀음을 하자고 대드는 것은 더더욱 곤란하다. 북한이 천사로 변신하기를 고대하며 걸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이 지독한 ‘짝사랑 도박’은 멈춰야 한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