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시한을 6시간여 앞두고 ‘조건부 연기’를 결정했다. 이와 함께 일본은 수출규제 해제를 논의하는 국장급 대화를 재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종전 방침에 변화가 없다”고 발표했다. 결국 한국은 얻은 것도 없이 뽑았던 칼을 칼집에 다시 넣게 된 양상이다. ‘대법원판결’이라며 ‘3권분립’을 핑계로 방치하면서 반일(反日) 정서에 정치 선동 장난질이나 쳤던 정부의 무능 외교가 초췌한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의 결정 배경에 대해 “일본이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 재검토 의향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대화로 풀어가고자 하지만 해결되지 않으면 WTO 제소 절차 등이 언제든지 재가동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본 측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아사히신문은 24일 한일 지소미아 종료 정지 직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주위 사람들에게 “일본은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다. 미국이 강해서 한국이 포기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 전 주한 일본대사의 “(일본의) 강경한 대한국 정책이 효과를 봤다”고 한 발언을 게재했다.

한일 갈등의 진원지인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부터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대법원이 판결의 파장과 휘발성을 좀 더 깊이 헤아렸다면 국익을 생각해서 조금은 슬기로운 결정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정치적 목적으로 ‘한일 청구권협정’을 일방적으로 무효라고 강변하는 진보정권의 논법은 더 큰 문제다. 나라를 진실로 걱정하는 일부 진보 인사들은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른 일본에 대해서 제대로 된 치욕을 안겨주기 위해서는 민간이든 정부든, 제발 일본에다 대고 쪽팔리게 돈 달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피해자들을 당장 도울 수 있도록 배상금은 우리 정부와 민간기금으로 감당하면서, 무책임하고 파렴치한 일본의 행태에 대한 심판은 국제여론과 역사에 맡기자는 이야기다. ‘속 빈 강정’에다가 제 발등이나 연신 찍어대는 외교·안보력에 대한 일대 혁신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