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다 보니 나의 눈은 다시 신채호로 향한다. 옛날부터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은 외로웠던 모양이다. 단재 신채호는 선생이라 불러 마땅한 선배 선각자였다.

‘민족’이란 서양에서처럼 근대에 들어서나 자본주의 상품이 미치는 단위를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체 양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달리 신채호는 아주 오래 전부터 형성, 발전되어 온 민족사를 규명하려 한 학자였다. 황당한 역사를 주장했던 사람이 아니요 민족의 이상을 품고 있었고 가려진 진실을 밝히기 위해 투쟁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는 확실히 잃어버리고 잊혀지고 훼손된 것을 새롭게 일구어 내 본체를 드러내고자 애쓴 사람이어서 『조선상고사』나 『조선상고문화사』는 그 처절한 사투의 기록들이다.

예를 들어, 그의 『조선상고사』는 사료의 수집과 선택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옛 비석을 참조하고 각 서적들을 서로 비교하고 진서와 위서를 가르는 제 주의를 기울이고 지명이나 인명 등을 해석하는데 따르는 문제들을 거론하며 이두문을 해석하는 방법, 우리와 가까운 인접 민족들의 언어와 풍속으로부터 추론해 내는 방법 등에 관해 그 나름의 치밀한 사유를 구축하고자 한다.

“역사 재료에 대하여 그 사라진 것(亡)을 찾아서 기워 넣고(補), 빠진 것을 채우며, 사실이 아닌 것(僞)은 빼버리고(去), 거짓 기록을 판별하여 완비(完備)를 추구하는 방법”에 관한 『조선상고사』의 사유는 『조선상고문화사』에 오면 유증(類證), 호증(互證), 추층(追證), 반증(反證), 변증(辨證)의 다섯 가지 논리적 방법으로 가다듬어진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
방민호 서울대 교수

유증이란, 어떤 규칙이나 유별을 따라서 증명하는 것으로 삼경 제도 같은 것이 있어 둘이 이미 밝혀졌다면 다른 하나도 밝혀야 하는 식이다. 호증이란 사서들에 적힌 사실들을 상호 참조하여 증명하는 것이니, 한국사의 망실된 부분들이 많은 것을 안타깝게 여긴 그는 중국 사서들을 대거 참조하여 한국사의 사실들을 밝히려 했다. 추증이란 “이 사건이 있으므로 저 사건이 없을 수 없음”을 들어 증명하는 것이요, 반증이란 “반면에서 그 사실의 참을 발견”하는 방법이었으니, 사서 안에, 또는 사서들 사이에 서로 모순된 서술들이 공존할 때 진실을 밝히는 방법이었으며, 마지막으로 변증이란 것도 어떤 서술들에 담긴 내적 논리를 따져 이치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를 따짐으로써 진실 여부를 가리고자 하는 것이었다.

단재는 헛된 이야기라도 쓸 수 있으면 좋다는 식의 몽상가는 전혀 아니었다. 그를 알면 알수록 그의 외로움에 대한 나의 사랑도 자꾸자꾸 깊어지는 것 같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