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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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관악신림 종합캠퍼스로 이주하기 전 마지막 동숭동 캠퍼스 졸업식은 유난히 추운 날씨였다. 이날 벌어진 서울대 29회 졸업식에선 기가찬 촌극이 벌어졌다. 교육부장관의 축사가 시작되자 가운을 입은 졸업생들이 난데없이 “둔마장관”이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의자를 돌려 등을 단상에 대고 둘러앉는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1974년 9월 문교부 장관에 발탁된 유기춘 장관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 앞에서 “이 둔한 말에 채찍질을 가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한다’는 뜻을 가진 사자성어 ‘주마가편(走馬加鞭)’에서 주마가 둔마(鈍馬)로 바뀌었다. 이후 그는 ‘둔마 장관’으로 불리며 세간에 놀림거리가 됐다. 권력자에 아부하는 전형적인 모습으로 두고두고 회자됐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지소미아 폐기, 한미공조와 한일관계 악화, 특목고 폐지, 원전폐지, 4대강보 파괴 등등 이런 정책에서 청와대 눈치만 보면서 제대로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이 청와대 주변에 없다는 사실이 둔마장관의 에피소드를 생각나게 한다.

정부 관계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현재 추진 중인 여러 가지 정책이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상당히 많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정부 하급관료들은 현 정책에 대한 반론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왜 권력에 아부하고 바른말 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일까?

오래전 한 동화가 생각난다. 사기꾼 2명이 궁궐 앞에서 “우리는 바보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신비한 옷감을 짭니다”라고 외친다. 임금님은 귀가 솔깃하여 그 두 사람을 궁으로 불러들여 옷을 만들라고 명령을 했다. 사기꾼 두 사람은 베틀을 놓고 옷 짜는 시늉만 하다가 드디어 옷을 만들었다고 하면서 임금 앞에서 옷을 입어보라는 것이다. 임금의 눈에는 옷이 보이지 않았지만, “이렇게 좋은 옷이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싱글벙글 했고, 신하들은 보이지 않는 옷을 두고 온갖 아양을 떨며 색도 무늬도 이렇게 좋을 수 없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의기양양한 임금님은 거리를 활보하고 싶어 거리행진이 시작되었다. 옷에 대한 소문을 들은 백성들은 벌거벗고 거리를 활보하는 임금님을 보고도 모두가 하나같이 좋은 옷이라고 칭찬을 하는 코미디가 벌어졌다. 그러던 중 한 어린아이가 외쳤다. “벌거벗은 임금님이다” 그제야 백성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안데르센의 ‘벌거벗은 임금님’은 거의 200년 전인 1800년대 초 발표됐다. 약 50년 전의 ‘둔마장관’이나 200년 전의 ‘벌거벗은 임금님’의 모습은 지금 우리 정치 사회의 자화상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합리적 사고에 의한 사회 경제, 정치상황을 판단하여 청와대에 직언을 할 수 있는 양심있는 관료가 절실히 요구된다.

야당대표가 거리로 나와 무기한 단식을 시작했다. 단식을 비아냥 거리는 분들이 있다면 정말 단식을 해보았냐고 묻고 싶다. 과거 필자도 단식을 해보았다. 단식 정말 힘든다. 장난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죽 절실했으면 삭발과 단식을 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 우리 관료들은 둔마에게 채찍을 때려달라고 하고 벌거벗은 임금님을 바라보면서 옷이 멋있다고 박수를 치고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