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중 가장 오래된 책.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분노’ 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지배하려 드는 아가멤논 왕에 대한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대서사시는 시작하지요.

스테판 에셀은 2차 대전 중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겨우 탈출, 목숨을 건지고 나치즘에 저항하며 살아갑니다.

평생 우리의 자유를 옥죄는 거대 시스템에 저항하는 삶을 일구신 분이지요. 그가 프랑스 젊은이들에게 외치는 노구의 목소리입니다. “나는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분노의 동기를 갖기 바란다. 이건 소중한 일이다. 내가 나치즘에 분노했듯이 여러분이 무언가에 분노한다면, 그때 우리는 힘있는 투사, 참여하는 투사가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게 되며, 역사의 이 도도한 흐름은 우리들 각자의 노력에 힘입어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이 강물은 더 큰 정의, 더 큰 자유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 스테판 에셀 ‘분노하라’

동물과 사람의 결정적 차이가 있습니다. 동물에게도 물론 생각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본능에 따른 반응 일부일 뿐입니다. 사람에게 있는 고유한 능력은 ‘생각을 생각하는 힘’입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나 스스로를 한 발짝 떨어져 생각할 수 있는 메타 인지 능력 즉 메타노이아입니다.

이 능력을 발휘할 때만 사람은 동물과 구분될 수 있습니다.

생각을 생각하는 힘 기르기. 자유를 앗아가려는 교묘한 술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삶의 방식입니다. 이 힘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요?

글을 쓰는 작업이 유일한 훈련 방법입니다. 내 생각을 텍스트로 쏟아내고, 텍스트로 문자화된 내용을 보면서 내 생각을 한 걸음 떼어 놓고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이 힘이 싹트기 시작하는 삶은 진정한 자유를 항해 마침내 위대한 첫 걸음을 떼는 삶입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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