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한 멋을 간직한 선비의 고장, 속 깊은 가을빛에 젖다
고고한 멋을 간직한 선비의 고장, 속 깊은 가을빛에 젖다
  • 홍성식·김세동 기자
  • 등록일 2019.11.20 20:05
  • 게재일 2019.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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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를 잘 복원한 영주 선비촌.

조선 유림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소수서원’·’선비촌’으로…

조선시대의 왕은 요즘의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일정 기간 동안 통치권을 행사하는 ‘최고위직 국민의 심부름꾼’이다. 반면 조선의 왕은 한번 자리에 오르면 죽을 때까지 하늘을 대신해 ‘백성 위에 군림하는 천자(天子)’로 행세했다. 그 시절엔 비단 조선만이 아닌 아시아 여러 국가의 황제, 유럽의 제왕도 마찬가지의 지위를 누렸다.

그 같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왕이 특정한 교육기관의 현판을 직접 써주고, 여기에 땅과 책, 노비까지 선사한다는 건 대단히 큰 의미를 가지는 행위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왕의 신뢰와 애정을 받은 조선의 사립대학을 ‘사액서원(賜額書院)’이라 부른다.

영주의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그렇기에 영주시민들이 ‘선비의 고장’이라는 프라이드를 가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조선시대 유림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영주 소수서원.
조선시대 유림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영주 소수서원.

조선 중기 유림의 거두 주세붕(1495~1554)은 풍기군수를 지냈다. 그가 세운 서원이 백운동서원. 이후 ‘조선 성리학의 시스템을 완성했다’고 추앙받는 퇴계 이황(1501~1570)은 왕에게 이 서원에 현판과 서적을 내려줄 것을 청했고, 명종(조선의 13대 왕·재위 1545∼1567)은 퇴계의 부탁을 받아들여 ‘소수서원’이란 현판과 많은 책들을 선물한다. 더불어 면세·면역의 권한까지 부여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액서원이 된 소수서원은 조선 말기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도 건재할 수 있었다.

기자가 소수서원을 찾았던 시간은 늦가을 해질 무렵. 바람 소리와 은은하게 풍겨오는 소나무의 향기가 가득할 뿐 서원 주위는 고요했다. 건물 기와에 내려앉은 햇살이 부침(浮沈)을 거듭했던 조선 유림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고 있었다.

 

세월의 때가 묻은 강학당 툇마루 아래 서니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읽는 젊은 선비들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 같았고, 사방을 둘러싼 은행나무가 노란 옷을 갈아입은 경렴정에선 주세붕의 그림자가 환영처럼 어른거렸다.

어두워지기 전에 바쁜 걸음으로 취한대와 탁청지, 서원의 스승들이 생활하던 일신재 등을 돌아봤다.
 

물론 ‘紹修書院’이란 쓴 명종의 글씨와 700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색채가 선명한 ‘대성지성 문선왕 전좌도(大成至聖 文宣王 殿坐圖)’도 만날 수 있었다.

소수서원을 둘러본 후엔 이곳을 찾는 관광객 10명 중 9명은 찾게 되는 선비촌으로 향했다.

“학문과 예의를 숭상했던 영주의 전통을 잇고, 현대를 사는 우리가 마땅히 계승해야 할 선비정신을 고양시키기 위해 조성한 공간”이란 게 영주시청 관계자의 설명.

 

선비촌은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선비촌은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선비촌은 영주 선비들이 실제로 살았던 터전을 복원함으로써 그들의 정신을 잊지 않고 기억하도록 만들어졌다. 고풍스런 집들과 조그만 마을길이 여행자를 포근하게 안아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많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은 TV 드라마도 여러 편 이곳에서 촬영됐다고 한다.

‘입신양명’, ‘우도불우빈’, ‘수신제가’, ‘거구무안’이라는 유학적 가치에 따라 공간을 구성한 영주 선비촌에선 전통가옥 체험과 예절 교육을 경험할 수 있다.

대장간, 한지공방, 도예촌, 민속공예실 등은 도시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것들이라 아이를 동반한 부모들에게 인기라고 한다.

시간이 넉넉한 사람이라면 조선 유교와 관련된 각종 유물이 다양하게 전시된 소수박물관까지 방문해보기를 권한다.
 

영주 인삼박물관에서 만난 심마니 캐릭터 인형.
영주 인삼박물관에서 만난 심마니 캐릭터 인형.

인삼에 대한 궁금증 풀어줄 ‘인삼박물관’

영주시 풍기읍 창락리에 자리한 인삼박물관 앞에 섰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소설가 김종광(48)의 장편 ‘조선통신사’였다.

1763년부터 이듬해까지 일본을 다녀온 ‘계미통신사’의 행적을 맛깔스럽게 소설로 옮긴 이 작품 속엔 당시 일본인이 조선의 인삼을 어떻게 생각했었는지가 짤막하게 등장한다.


“먹으면 늙지 않고 죽지도 않는다”는 과장된 소문으로 인해 일본 사람들은 가느다란 인삼 한 뿌리조차 귀한 보물 모시듯 했다. 남녀를 불문하고 통신사 일행에게 적은 양의 인삼이라도 얻고자 온갖 아양을 떨었다고 한다.

비단 옛날 일만도, 일본만도 아니다. 터키와 불가리아 등의 나라에선 현재까지도 인삼이 ‘희귀한 병을 치료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인삼 성분이 소량 함유된 과립까지 인기가 높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이처럼 아주 오래전부터 귀한 대접을 받은 약재이니 우리에게도 인삼에 대한 궁금증이 없을 수 없다. 영주 인삼박물관은 이런 세간의 궁금증을 깨끗하게 해소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풍기 지역에서 재배한 인삼은 통상 10월 중순이나 11월에 수확된다. 다른 지역에 비해 수확 시기가 1개월 정도 늦다. 이로 인해 잎과 줄기의 영양분이 뿌리에 축적되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

“소백산이 선물한 맑은 공기와 특유의 토질이 조직이 치밀하고, 향이 강한 인삼을 만들어준다”는 평가 또한 있다. 영주 풍기인삼은 약탕기에서 여러 번 끓여도 쉽게 물러지지 않는다. 최고의 인삼 산지로 일찌감치 자리매김한 영주에 ‘인삼박물관’이 들어선 건 당연한 수순처럼 보였다.

인삼박물관측은 “한국 인삼의 역사와 효능을 관광객에게 알리고, 인삼과 관련된 유물을 한곳에 모아 전시하기 위해 ‘시간을 이어온 생명의 숨결’이란 주제로 박물관을 조성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박물관은 인삼의 전파 경로를 소개하고 기획전시를 여는 로비와 한국 인삼의 기원과 인삼의 생육 환경을 요약해 보여주는 ‘인삼 전시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1층에서 2층 입구로 이어지는 통로엔 인삼이 오가던 길을 흥미롭게 재현한 곳이 있어 어린이 방문객들의 호기심과 탄성을 불러낸다. ‘인삼 나라’라고 이름 붙인 체험관에선 인삼포 만들기, 산삼 캐기 놀이 등을 즐길 수 있다.

널찍한 카페와 야외무대도 갖춘 영주 인삼박물관은 건강 정보와 함께 즐거움까지 얻을 수 있는 흥미로운 가족 여행지다.

 

금성대군 신단.
금성대군 신단.

비극의 왕조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금성대군 신단’

한국사를 전공한 선배에게 영주에 갈 것이란 말을 전하니 “금성대군 신단에 꼭 가보라”고 했다. “왜냐”고 되묻자 이런 슬픈 대답이 돌아왔다.

“아끼던 조카(단종)가 임금 자리를 뺏긴 것도 마음 아팠을 텐데, 형(세조)에게 죽임까지 당했으니 얼마나 비극적인 삶이냐. 아픈 역사도 역사니까 듣지야 못하겠지만 가서 위로의 말이라도 한마디 전하는 게 좋지 않겠니.”

‘세조(수양대군)-금성대군-단종’은 피로 이어진 혈족 관계였다. 그러나 보통의 친족들처럼 서로를 감싸주며 아껴주지 못했다. 조선 초기의 아픈 역사를 이야기 때 수없이 등장하는 스토리이기에 더 이상은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 숙부와 조카, 형과 아우가 다투다가 억울하게 피를 흘린 이 사건은 영화와 드라마, 연극으로도 여러 차례 만들어졌다.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쓸쓸하게 서있는 금성대군 신단(錦城大君 神壇)은 조카 단종을 다시 왕으로 복귀시키려던 금성대군이 이에 실패하고 형 세조에 의해 죽음을 맞은 후 세워진 제단(祭壇·제사를 올리는 단)이다. 세조 2년(1456) 사육신 등과 함께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발각된 금성대군과 추종자들은 죽음을 피해갈 수 없었다. 세조의 성격은 거칠고 불같았다고 한다. 그랬기에 당시 금성대군이 있던 순흥부는 폐읍(廢邑·일정 지역을 없애버림)의 고통까지 겪어야 했다.

가을날 영주 풍경은 더없이 평화롭고 아름답다. 하지만 세상사 대부분이 그러하듯 환한 빛의 반대편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존재하는 법. 찾아오는 사람들 드문 금성대군 신단. 조그만 비석 하나만이 이곳이 그 옛날 ‘골육상쟁(骨肉相爭) 왕조사’의 현장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권력은 무엇이고, 왕의 자리란 과연 무엇일까. 동생과 조카를 죽이면서까지 차지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홍성식·김세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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