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열 한동대 교수
장규열 한동대 교수

바뀌지 않을 수 있을까.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세월이 흐르고 사조가 바뀌며 세대가 변하고 세상이 달라진다. 아니 이미 변화했다. 당신은 십 년 전 당신이 아니며 생각도 그때와는 다르다. 좀 가만히 있으려 해도 가파르게 달라져 가는 세상이 그대로 두지 않는다. 조금만 눈을 떼고 있으면, 사물들의 모습이 어느새 몰라보게 바뀌어 있는 걸 발견하곤 한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가 많은 걸 바꾸어 내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사물을 대하는 태도도 함께 바뀌어 간다.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이해와 각성에 이르기도 한다. 소통하고 관계를 만드는 방법도 이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스승과 제자, 상사와 부하, 남자와 여자, 위정자와 국민, 국가와 국가. 모두 다른 세상을 만나는 중이다.

한국 기독교 내 가장 보수적으로 알려진 교단 신학교에서, 교수들이 성희롱적 발언을 한 사건이 발생해 물의를 빚고 있다. 여성의 성기를 자극적으로 언급하며 비하했는가 하면, 외모를 놓고 희롱하는 발언까지 있었다고 한다. 수업과 채플 등에서 성희롱과 성차별 발언이 있어, 학생들과 학교 당국이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고 한다. 성직자를 기르는 이들이 어떻게 그런 행태에 이르게 됐을까. 그들이 섬길 사람들의 가슴에도 상처를 입힐 뻔 하지 않았는가. 성경 구절이 혹 남녀를 구분하고 차별하며 여성을 가벼이 여기는 일에 정당성을 부여했더라도, 오늘 바뀐 세상이 이를 부당한 것으로 바라보는 터에 어떻게 그 같은 옛 모습을 아직도 고수하는가. 보수(保守)라 하여 어느 것도 바꿀 수 없다는 수구(守舊)에 머물러야 하는가.

진보라 하여 급진을 추구하지 말아야 하듯이, 보수라 하여 수구를 고집하면 안될 일이다. 진보가 변화에 신중해야 하며, 보수는 변화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보수가 오히려 세상 변화에 민감해 바꾸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을 헤아려야 한다. 어차피 바뀌어 가는 세상을 멈출 수 없을 바에야, 보수가 변화를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 보수의 생명은 그 변화를 어떻게 맞느냐에 달려 있다. 용도폐기에 이른 가치를 붙들고 고집하는 보수는 부끄럽고 처연하다. 생각의 틀을 시대정신에 걸맞게 빚어내는지 국민이 불꽃같이 살피고 있다. 이전과 다르게, 살피고 헤아릴 도구들은 국민의 손에 들려있지 않은가.

여성에 대한 차별과 경시는 부당하다. 양성은 각각 특별한 존재로 인식돼야 하며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함부로 칭하며 가벼이 대하면 안 되고, 그 어떤 목적을 가지고 대상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동료로서 여성을 새롭게 발견하길 바라고 더욱 폭넓은 가슴으로 받아들이길 기대한다. 어머니와 누이 그리고 딸들의 하루하루를 새겨보아야 한다. 보수라는 핑계는 낡아도 너무 낡았다.

보수가 새로워져야 한다. 진보가 정신이 번쩍 들도록 다시 태어나야 한다. 국민이 편안한 나라가 되기 위해 변화를 겁 없이 맞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