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의 등산
아버지와의 등산
  • 등록일 2019.11.19 20:03
  • 게재일 201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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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미봉에서 바라본 물안실.

2주 정도 되는 긴 휴가를 받았다. 그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이 너무 많았다. 휴가가 일할 때보다 더 힘들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녔다. 매일 술을 마셨다. 그 덕분에 몸무게가 불었다. 여름 내내 애써 뺀 살인데 며칠 사이에 허무하게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내가 간 곳은 부산, 충주, 인천, 일산 등이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거창에 있는 우리 집이다. 심정적으로 한 2년 만에 집에 내려간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한 일주일 정도 집에만 있을 생각이었는데 하룻밤만 잤다. 오래 있다가 간다더니 벌써 가냐며 아버지가 섭섭해 했다. 아버지가 냉랭해 보여도 ‘츤데레’란 걸 알고 있었는데 막상 확인하게 되니 만감이 교차했다. 아버지도 이제 나이가 많이 드셨나보다.

집에서 내가 한 일은 자고 먹고 하는 일이었다. 마음이 편안했다. 그리고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었는데 우리 동네에서 가장 높아 보이는 산에 올라가는 것이었다. 이 산은 실제로 1천200m 정도의 높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구름은 이 산을 넘지 못했다.

둥실둥실 떠온 흰 구름이 산을 넘지 못해 그 꼭대기에 걸렸고, 자꾸만 구름이 몰려들어 나중엔 먹구름으로 변했다. 그러면 어김없이 비든 눈이든 내렸다. 그래서 그 산만 쳐다봐도 날씨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어릴 때는 이 산의 이름도 몰랐다. 동네에 워낙 산이 많아 이름도 없는 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산악회를 따라 다니다보니 이 산이 백두대간의 한 줄기이면서 갈미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굉장한 산이 우리 집 앞에 있는데 여기에 올라가지 않는 것은 뭔가 반칙인 것 같아서 이번엔 꼭 올라가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아들이랑 등산도 한 번 가보고 해봐야지”라며 아버지가 같이 가겠다고 하셨다.

나는 사실 갈미봉을 지나 대봉, 못봉, 귀봉 등을 지나 덕유산의 향적봉까지 갈 생각이었다. 한 7시간이나 8시간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따라오신다니 아무래도 멀리 가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물, 빵, 사과 등을 챙겼다.

나는 신풍령에서 올라서 능선을 따라가 갈 생각이었는데 아버지는 우리 동네에서 갈미봉에 오르는 길이 있다고 하셨다. 아버지 말대로 군에서 만들어 놓은 등산 안내도도 있었고, 갈미봉으로 가는 길도 정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입구는 그럴 듯해보였는데 갈수록 야산이었다. 드문드문 벌목을 해놓아 작은 나무와 가시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 있었다. 산에 오르는 것이 곤욕이었다. 아버지는 그래도 개의치 않으셨다. 올해 일흔 둘인 아버지는 산을 꾸준히 다닌 적도 없는데도 잘 올랐다. 요즘도 달리기를 한다니 그 덕인가보다.

얼마쯤 걸었을까? 아버지가 갈미봉에 오르려고 한 이유를 말씀해주셨다. 아버지는 50년도 전에 동네 친구 분과 갈미봉에 온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때도 11월께였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하기로 한 전 날이었다고 한다.

아버지와 친구 분은 동네 사람들이 일을 하든지 말든지 당신들은 향적봉엘 가겠다고 모의를 했다고 한다. 한 2박 3일은 걸을 요량으로 솥, 쌀, 김치, 된장 이런 것을 챙겨서 저녁 즈음 산엘 올라 갈미봉에서 비박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더 늙으면 못 갈 것 같아 몇 년 전부터 그 친구 분이랑 갈미봉에 같이 가자고 약속을 했다고 한다. 재작년 추석께에는 다 준비까지 해서 막상 가려고 했는데 비가 내리는 바람에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작년에도 올해도 그 친구 분이 기력이 쇠해서 엄두를 못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내가 갈미봉에 간다니까 얼씨구나 하고 같이 가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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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버지의 이야기를 돌아오자면 갈미봉에서 하룻밤을 샌 아버지와 친구는 못봉까지는 용케 걸었나 보다. 그런데 등산이 목적이 아니라 동네에 일하기 싫어 도망친 것이니 향적봉까지 가는 것은 애저녁에 포기했다고 한다. 조금만 걸으면 배가 고프고 그래서 라면하나 삶아 먹고 또 얼마 안 걸으면 배가 고파서 또 라면 하나 삶아 먹고 그렇게 걸으니 얼마 가지도 못했었나 보다. 냇물에 된장을 풀어 가재를 잡아 구워도 먹고 삶아도 먹으며 사흘 밤을 밖에서 자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런 추억이 있던 곳이니 정말 얼마나 다시 와 보고 싶으셨을까.

아버지와 나는 길도 없는 비탈을 올랐다. 멀리서 볼 땐 가파르게 보이지 않았는데, 기듯이 산을 올라야 했다. 길 없는 길에서 저기만 오르면 정상이겠거니 하며 그렇게 2시간도 더 오른 것 같다. 혼자였다면 벌써 갈미봉을 찍고 못봉까지는 달아났을 시간이었다.

그래도 기어이 정상에 올랐다. 아버지 연세에 힘들었을 법도 한데 당신이 비박을 했던 곳을 찾겠다며 갈미봉 이쪽저쪽을 헤매며 아마 여기쯤에서 불을 피워놓고 잠을 잤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얼굴에 젊었을 적 모습이 언뜻 비취기도 했다.

정상에서는 우리 동네 구석구석을 볼 수 있었다. 저 산을 넘어가면 어디가 있고, 저 산엔 어쩌다 오르게 되었는고, 저기에서는 무슨 일을 했는지, 뭐 이런 것들을 설명해주었다. 아버지는 내가 처음 이 동네에 온 사람처럼 이곳저곳을 설명해주셨다. 나도 다 아는 곳이었지만 아버지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편안했다. 더 자주 이런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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