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게 그리고 초라하게 시작하자
작게 그리고 초라하게 시작하자
  • 등록일 2019.11.19 19:42
  • 게재일 2019.11.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연말이 다가온다. 이때쯤이면 지역 내 정치, 행정은 물론 주요 기업, 단체들도 새해의 신규 사업 발굴에 고심하기 마련이다. 사실 새로운 사업 추진을 위한 예산확보 문제는 특정 시기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바쁜 시간을 보낸다고 할 수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어떠한 분야를 불문하고 단일 사업이 계기가 되어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경우란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의 시대적 구분을 할 때 가장 상징적인 하나의 사건을 단지 인용할 뿐이다. 용암이 끓어오르지 않고 갑자기 화산이 폭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경제주체나 시민사회 구성원들의 가치관, 생활양식 등도 마찬가지다. 결코 이러한 것들은 하나의 계기나 사건, 사업만으로 변화할 수는 없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신규 사업을 구상할 때 과도한 기대를 접을 필요가 있다. 아무리 화려하게 사업조감도를 작성하고,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더라도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다. 신규 사업을 추진하였을 때 나타나는 진정한 효과는 수없이 통제할 수 없는 많은 요인들이 상호작용하면서 결정된다. 일례로 어떤 사업이 지역에서 추진될 경우 그 사업의 추진과정과 완료된 이후까지도 해당 사업의 성과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그 지역의 정체성, 경제 산업구조, 주민의 정치적 성향, 인구사회구조의 변화 등이 때로는 단독으로 때로는 복합적이고도 상호간에 영향을 미치면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해당 사업의 진정한 효과는 아무도 모른다가 정답이다.

문제는 정치가, 행정기관 또는 어느 기업의 최고경영책임자가 투표권자, 시민 내지는 주주들에게 무엇인가를 내세우려면 신규추진사업이 매우 거창하고, 화려하며, 엄청난 기대효과를 주는 사업이어야만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와 관련된 이해관계자인 투표권자, 시민 그리고 주주들도 마찬가지다. 어떠한 정치인이 자신들의 지역사회를 단번에 변화시켜주기를 바라고, 행정수장에게 지역이 갑자기 발전할 수 있는 정책을 펴기를 바라며, 경영진에게는 배당금이 전년보다 엄청 늘어나기를 기대한다.

바로 여기에 해당사업이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할 수 있는 요인을 내재하고 있다. 우리는 예전처럼 일사불란이라는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다양성, 계층 간 구분이 없는 포용성 등이 확산되면서 인재채용절차에서 조차 성별 나이를 불문하는 단계까지 왔다.

이러한 다양성 사회에서 모든 계층을 만족시키는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 분야의 단일 사업이란 애초에 있을 수 없음을 사업 입안자는 물론 이해관계자인 우리 모두가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리고 지금부터 사업의 규모나 외형보다는 어떠한 사업이든 하나씩 마침표를 찍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거대한 규모의 예산이 투입되고, 화려하게 치장한 엄청난 기대효과로 포장된 사업이 용두사미로 끝나는 악순환을 이제는 끊을 때가 왔다. 모든 지역민이 아니라 농어촌 어떤 한 구석 동네의 소수를 위한 사업이라도 하나씩 확실하게 마무리를 짓고 아주 조그마한 성과라도 낸다면 그것으로 좋다. 작게 더 작게, 화려하지 않고 초라하게 시작하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