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화사 월령루. 각화사는 봉화군 춘양면 각화산길 251에 위치해 있다.

산골 마을은 온통 무욕의 지혜들이 몸을 날린다. 한 때의 화려함에 미련을 두지 않고 시(詩)처럼 노래하고 시(時)가 되어 낙하한다. 언젠가는 고운 연둣빛으로 피어나 우리를 설레게 할 새로운 만남을 위한 이별들, 가을 숲은 공(空)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아늑하고 깊은 숲속, 장대한 막돌 축대 위로 각화사가 보인다. 신라 신문왕 6년(서기 686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선조 39년에 태백산 사고(史庫)를 세우고 조선왕조실록을 300년간 수호했던 사찰이다. 800여 명의 승려가 수행하는 국내 3대 사찰 중 하나였던 곳, 일제 강점기 때 의병 공격을 목적으로 일본군이 방화하여 월령루만 남은 것을 중창불사하였다.

인근에 있는 남화사(覽華寺)를 옮겨 절을 지은 뒤 옛절을 생각한다는 의미로 각화사(覺華寺)라고 불렀다. ‘세상의 모든 사물과 사상, 현상은 함께 일어나면서도 서로 의지하며 걸림 없이 교류하고 융합해 생긴다’는 화엄의 진리를 간직한 남화사. 부처와 중생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뜻으로 화엄의 도리를 직시하는 절이다. 각화사는 그 뜻을 잊지 말라는 뜻으로 지어진 사찰인 것이다.

‘태백산 각화사’ 편액을 단 월령루의 자태는 고고하다. 은은한 달빛이라도 흘러들면 영화로웠던 옛날의 정취가 더해져 교교한 느낌마저 들 것 같다. 전각들은 역사가 깊어 보이지 않고 소박하지만 자존심이 서려 있다. 인적도 없고 염불소리도 들리지 않는 마당을 가을바람 홀로 쓸쓸히 쓸고 있다.

사찰의 이름과 어울리는 절이다. 아름답고 그리운 한 때를 각화사는 잊지 않고, 나는 과거의 흔적을 찾아 서성인다. 애를 써 봐도 흑백 사진에 담겨 있던 그 옛날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경내를 둘러보아도 발길에 차이는 것은 적적함뿐이다. 까마귀 한 마리 울며 날아간다. 나뭇잎들이 놀라 떨어지고 시린 허공이 잠시 떨리고. 하지만 절도 숲도 이내 고요해졌다.

인드라의 그물은 우리가 사는 세상보다 더 큰 세상을 덮고 있다. 단풍과 빛, 낙엽과 바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수많은 관계와 관계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삶터, 나는 하필이면 백두대간 수목원의 인파 속을 무심히 지나쳐 이곳으로 왔을까?

대웅전 법당문을 연다. 화려한 닫집 아래 협시보살 없이 석가모니 부처님 홀로 나를 맞는다. 바깥풍경과 달리 법당 안은 안온한 열기로 가득하다. 누군가의 식지 않은 기도가 머물러 있었을까. 천장에 빼곡하게 매달린 불자들의 소원등과 수미단 위에 정성스럽게 차려진 공양물 때문일까. 늘 드나들던 법당처럼 낯설지 않고 아늑하다.

미미하지만 큰 존재임을 깨달아 가슴 뿌듯했던 오늘, 혼자 법당을 차지하고 앉은 이 시간도 좋다. 잘 짜여진 일정처럼 무여 스님에 이어 각화사와의 고요한 만남,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친 나를 떠나보내고 맑고 향기로운 나를 위해 기도한다.

후드득 내 안에 꽃이 피어난다.

산 그림자가 염치도 없이 법당문을 두드릴 때까지 부처님은 가만히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 태백산 정기가 머무는 태백 선원의 비어 있는 선방들이 자꾸 가슴을 헤젓는다. 수많은 고승들이 거쳐간 금봉암이라 불리는 동암은 어디쯤 있을까. 한 때는 선지식의 그늘에서 화두를 잡고 태백산의 기운을 한 몸에 받고자 먼 길을 마다 않고 찾아와 좌복을 깔던, 그 자랑스럽던 영화는 어디로 갔을까?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선지식의 침향 같은 일화들은 두고두고 큰 울림으로 남는다. 지금 우리는 후세에게 남겨줄 정신적인 유산이 있을까? 우리는 무엇을 향해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가? 월령루 옆 무릎이 시려 보이는 삼층석탑과 눈이 마주친다. 상처가 많아서 보물로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걸까? 내로라하는 이름표 하나 없어도 탑의 눈빛은 깊고 평화롭다. 속살마저 푸른 기운이 감도는 정감 넘치는 탑, 청이끼가 유일한 훈장이다.

고된 삶 위무 받고자 산사를 찾았다가 부처님 가피 받아 이곳에 주저앉아버린 불심 깊은 어느 여인의 모습이 저러할까. 닳고 닳은 무릎을 일으키며 아픈 영혼들을 보듬어 주었을 것만 같은 탑이다. 삶이 힘들다고 섣불리 언설하지 마라. 편한 것만 찾으면 삶이 너무 싱겁지 않겠느냐. 탑의 말씀이 들린다.

가슴 적시는 모든 것에는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가 숨어 있다. 무명의 탑처럼 드러나지 않게 안으로 승화시키며 살겠노라 발원한다. 언젠가는 선지식의 발자국을 찾는 이들로 태백선원 처마 밑도 북적이리라. 인기척 없이 고요한 절을 두고 돌아서는 발걸음에 연등 하나 달린다. 내려오는 길이 환하다.

달빛이 고운 날, 축서사로 달려와 탑돌이라도 해보고 싶다. 탐진치 내려놓고 팔정도 가슴에 새기며 온몸으로 달의 기운 받는 일은 얼마나 행복할까. 내게로 향하는 깊고 향기로운 기도 하나만 있어도 분명 행복할 것이다. 짧고 따뜻했던 각화사와의 첫 만남이 나를 기도케 한다.

‘날마다 깨끗한 마음으로 등불을 켜겠습니다. 눈물로 지새는 누군가의 영혼이 밝아올 수 있도록. 힘들어도 포기하거나 주저앉지 않겠습니다. 아주 가까운 이의 가슴에 퍼렇게 멍이 들지도 않도록. 나는 날마다 하나의 꽃으로 피어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