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기봉 감독의 ‘익사일’

두기봉 감독의 영화 ‘익사일’ 포스터

“우리 이제 어디로 가지?”

쫓기는 남자들. 갈림길에서 갈 곳을 잃는다. 딱히 정해둔 목적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쉽게 세웠던 계획들은 만만찮은 대가를 치른다. 끊임없이 선택의 순간에 서게되는 남자들은 우정과 의리를 내세워 목숨을 건다.

선택의 순간에 늘 동전을 던지는 이들은 근엄한 표정으로 결정된 길을 따라 이동하고, 머물며 권총을 뽑는다. 몰리고 몰리며 그들이 다다른 곳은 바다다. 홍콩을 가로질러 마카오로 건너가는 부둣가에서 남자들은 마지막 동전을 던진다.

두기봉 감독의 영화 ‘익사일’에서 현실적이거나 스토리의 치밀한 연관성을 찾기는 어렵다. 애초에 그것을 염두에 두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시작부터 시종일관 ‘폼’을 잡는다. 담배와 권총, 금괴탈취에서부터 하모니카가 등장하는 순간은 서부극의 전형이다. 황량한 사막에서 복잡한 현대의 홍콩거리로, 말 대신 자동차가 등장할 뿐 서부영화로 보아도 무방하다. 실제 많은 오브제들을 서부영화에서 대놓고 차용하고 있다. 대부분의 서부영화가 그러하듯 어디서 왔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첫 등장부터 인물들에게 촘촘히 짜여진 사연은 없다. 그들의 인과관계는 느슨하고 사건의 기로에서 적이 됐다가 다시 아군이 된다. 오로지 상황과 그 상황 속의 액션에 집중한 영화다.

그래서 영화 ‘익사일’은 호불호가 갈린다. 시종일관 ‘폼’만 잔뜩잡은채 끝을 맺고 있는 영화의 허망함에 실망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호쾌하고 화려한 액션 시퀀스들이 주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적어도 그 액션 시퀀스들은 세련되고 창조적이며 화려하다. 영화를 위해 그 장면이 필요했다기보다는 그 장면을 위해 영화의 나머지들이 필요했다는 느낌이 든다. ‘익사일’에는 자그마치 다섯 개의 주요한 액션 시퀀스가 있으니, 그 기대감을 따라 108분의 러닝 타임이 빠르게 지나간다.

두기봉 영화의 특징이다. 그의 영화에서 탄탄한 스토리가 각인되었던 영화는 ‘흑사회’를 제외하곤 거의 없었다. 성긴 스토리와 어설픈 전개 사이로 반짝이고 재치있는 장면들이 알알이 들어가 박힌 영화가 바로 두기봉 스타일이다. 분명히 두기봉 감독은 그의 스타일을 살리는 장면을 위해 영화의 나머지 모든 것들은 장식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일컬어 지는 ‘스패로우’ ‘대사건’ ‘매드 디텍티브’등의 영화들이 분명한 두기봉의 인장을 남기고 있다.

오래된 사진 속에 남은 추억의 한자락처럼, 화려했던 홍콩 느와르의 재림을 위해 영화 ‘익사일’ 속의 주인공들은 현란한 춤과도 같은 액션장면을 연기한다. 서부영화가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을 넘나들 때 ‘익사일’의 무대는 광활한 대륙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홍콩의 끝자락 한적한 부둣가에서 마지막 남은 희망을 뒤로하고 좁고 어두운 홍콩의 뒷골목으로 들어선다. 서부영화가 어디로든 막힘없이 탈주하는 공간이라면, 영화 ‘익사일’은 크게 다르지 않은 선택지를 고르는 여정을 이어간다.

추방(exiled)된 자들의 탈출하지 못한 여정에 놓인 다섯 개의 총격 장면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하다. 유치하고 쓸데없이 근엄하고 ‘폼’잡지만 그 속에 환상적이며 아름다운 액션 시퀀스가 있다는 것이 이 영화를 다시 보게하는 이유다.

/김규형 문화기획사 엔진42대표

※두기봉 감독의 ‘익사일’은 네이버영화나 구글플레이에서 다운로드하여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