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가서 가사문학 얘기 하는데, 공부도 공부지만 김학성 선생 만나 객지 잠 못드시는 이야기 듣고, “암만” “암만”하는 사투리도 듣고 박현수 ‘5촌 조카’광주 문흥지구까지 나가 무등산 막걸리도 한잔 걸치고, 다음날 아침 일찍 무주로 올라와 김환태 평론상 수상자 최명표 선생 일하느라 생고생 이봉명 시인 만나 네 시간 넘어 걸려 상경 하노라니 일요일에 천근만근 비가 오려는지 왼쪽 목 어깨며 등이며 고질병이 도져 아침에도 정신을 차릴 수 없는데 스마트폰 알려주는 일정표 따르면 김흥식 샘‘ 이기영 연구’일천오백 매 원고 떠들어 봐야 할 약속이 잡혔으니 점심 지날 때까지 마음 초조 몸은 엉금엉금 두 시 넘어서야 겨우 거동하여 걸어야 산다는데 걸을 힘은 없고 털털 자동차 끌고 구기터널 지나 세검정 자하문 경복궁 조계사 지나 공영 주차장에 파킹을 해놓고 컴퓨터 펴들러 커피숍 들어가 아메리카노 한 잔 놓고 원고를 넘기는데 ‘세계관의 형성 기반과 작가적 입신의 전사’,‘초기작의 세 유형과 민중 계몽주의의 한계’, ‘방향전환기 계급 소설의 양상’, ‘작가적 반성과 근대소설의 정점’, ‘전형기 이후의 추이와 명암’, 서둘러 체제를 보아 나가는데, 아하, 한 사람 공부가 사람마다 제각기되 소걸음 느릿느릿 그런데도 전차 걸음 천리 길 걸어 충남 하고도 아산 덕수 이씨 충무공 12대 지손 작가 민촌 이기영 생애와 작품이 여기처럼 자세 정심 알뜰하게 밝혀진 곳 없었으니 새삼 재삼 중병 앓는 선생 무서운 공력에 고개 끄덕이며 제목이며 체제며 이리저리 궁리하다 시간을 잠깐 놓쳐 다섯 시 언뜻 지나 골목 안 사천 이모집 달려가니 홍기돈 유찬열 먼저 와 기다리다 이십여 분 늦으신 선생을 맞아 이 집 명물 불고기에 굴전을 시켜놓고 책 만드는 상황을 점검해 보는데 이야기가 제목을 정하는 데 이르자 ‘한 근대 작가의 초상ㅡ이기영 연구’, ‘이기영 문학의 원점과 지향’등등 거론타가 선생이 직접 나서 ‘작가’말의 유래 밝히시며 ’작가 이기영, 그 생애의 치열성과 문학적 진실의 수준‘이라는 긴 제목을 제안하시니, 그것, 참, 길기는 하다만 1895 출1984 몰 작가 이기영 자취 제대로 담긴 듯하니 드디어 선생 책이 모양 갖추는구나 며칠 전 위출혈로 응급실도 가셨다는 선생은 식욕 없어 부지런 젓가락 놀리는 우리들만 쳐다보며 말씀만 이으시니 이윽고 일이 끝나 이모집 나서는데 때 아닌 늦가을비 기와를 때리나니 이 비 그치면 초겨울이리 엊그제 입동이니 어김이 없으리니 비닐 우산 사들고 제각기 흩어지되 선생 혼자 안국역 쪽 표표히 사라지시니 인사동 옛 거리가 적막하기 그지없어 인생은 오간데 없고 빗소리만 깊어라.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