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열한동대 교수
장규열 한동대 교수

한글은 우수하다. 소리가 그대로 눈에 보이도록 고안된 글자를 가진 민족이 세상에 드물다. 문맹률이 제로에 육박하는 겨레가 아닌가. 그런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수년 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문서독해력에서 조사대상 22개국 가운데 꼴찌였다고 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국민들 가운데 생활정보가 담긴 보통 문서해득에 취약한 사람이 38%나 되고, 고도의 문서독해능력을 가진 사람은 2.4%에 불과하다고 한다. 적힌 글을 읽을 줄 안다는 것과 글에 담긴 생각을 짚을 줄 안다는 것이 다르다면, 우리는 ‘글’에 대하여 생각을 다시 해야 하지 않을까. 우수한 글자를 가졌으면서 글을 이해함에는 어째서 더딘 것일까. 기계적인 글 읽기를 넘어, 글을 이해하며 분석하고 비판하고 다루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누군가 적어 발표한 글이라 해서, 일방적으로 비판없이 수용하지도 말아야 한다. 디지털 문명이 펼쳐지는 길목에 글과 내용에 그럴듯한 모양을 입히는 일은 너무나 쉽다. 사실을 전하고 있는지, 진실을 담았는지, 필자는 누구인지, 인용한 내용의 출처는 분명한지, 글의 의도는 무엇인지, 전하려는 의미는 어떤 것인지 묻고 물으며 글을 대하여야 한다. 언급하기도 부끄럽지만, 가짜뉴스가 기성언론을 무색하게 하는 지경이 아닌가. 일인 미디어가 언론기관에 도전하는 환경이 아닌가. 미디어시스템과 언론매체들이 긍정적으로 작동할 것인가는 이제 소비자에게 달려있다. 이전보다 더 많이 읽어야 하고, 비교하고 분석하며 날카로운 비평적 시선을 가질 때 언론이 긴장하고 미디어가 제 역할을 회복할 터이다.

가짜뉴스에 포위되어서일까, 매체들이 ‘팩트체크’를 한다는데. 글의 내용이 팩트,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를 체크, 즉 확인한다는 것이 아닌가. 그럼, 이전의 기사들은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썼다는 말인가? 코바크(Bill Kovach)와 로젠스틸(Tom Rosenstiel)은 명저 ‘저널리즘의 기본(Elements of Journalism)’에서 ‘언론행위의 기본은 사실확인에 있다’고 하였다. 차라리 조금 더 깊이 들여다 보겠다거나 한 걸음 더 들어가 살핀다는 정도였으면 좋았을 것을 ‘팩트체크’를 이제 한다니 공연히 불안해지는 게 아닌가. 사회의 기본적인 소통은 언론이 바로설 때 가능해진다. 언론이 보내준 글에서 독자들이 유용하고 신뢰할 만한 내용을 접할 수 있도록 잘 적어 주길 바란다.

글은 소중하다. 생각을 전하고 마음을 나누며 소통하고 설득하는 일은 모두 글을 통해 일어난다. 기자나 작가 뿐 아니라, 어떤 일을 하든지 내 생각을 남에게 전하려면 잘 써야 한다. 좋은 글을 잘 쓰려 해도 기본은 역시 글 읽기에서 출발한다.

‘실질문맹률’도 다시 낮아져야 한다. 보고 읽을 뿐 아니라 살피고 새기는 데에도 앞서가야 한다. 글이 독자를 두려워 해야, 가짜뉴스도 사라질 게 아닌가. 대학입시에도 성공해야 하지만, 글을 다루는 솜씨를 길러야 한다. 다음 세대의 성공이 글을 벼르는 능력에 달려있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