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재포항예총 회장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

며칠 전 포항문화원 전임 원장님이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2007년 제6대 원장으로 취임하여 7대까지 8년간 포항문화원장직을 역임하셨고, 경상북도문화원 연합회장직을 겸직하기도 하며 포항과 경북의 전통문화 계승 발전을 위해 열정적으로 헌신한 그의 타계 소식은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지역문화 태동기의 애환을 비롯하여 문화도시의 미래에 대한 염려까지 열변을 토하시던 모습이 생생히 떠올라 이별의 아쉬움이 더욱 각별하였다. 생자필멸은 불변의 이치니 아무리 아쉬운 일이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우리도시의 문화예술을 지탱하던 든든한 기둥이 빠져버린 그 빈자리는 또 누가 채울 것인가?

그와의 갑작스런 이별이 당황스럽기는 하나 예견된 일이기도 하였다. 2015년 건강에 이상 징후를 발견하여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병문안을 간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이 ‘메르스’라고 하는 당시로서는 매우 생소한 질병으로 전국이 공포에 휩싸여 있을 때였다. 멀리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입원실에서 만난 그는 늘 그랬듯이 만면에 웃음을 가득 담으시고는 “염려했던 질환이 아니라 담낭 쪽에 약간의 문제가 있어서 수술을 성공적으로 했으니 이제 아무 염려 없다”고 하셨다. 평소 남다른 건강을 자랑하셨고, 언제나 젊은 생각으로 청춘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셨으니 이별의 시간이 이토록 급하게 올 줄은 예상치 못하였다.

원장님은 재임 중 지역의 언어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포항사투리 경연대회를 시작하여 큰 호응을 얻었고, 경북의 23개 시군문화원을 직접 탐방하며 문화원 발전 방안의 모색과 정보교환에 힘썼고, 이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책자 ‘경북문화’를 창간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고, 그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다.

훤칠한 키에 수려한 외모, 기품 있는 한복을 즐겨 입으셨고, 더러 화장도 멋지게 하셨으며 혼자서 영화관을 즐겨 찾기도 하는 낭만 넘치는 멋쟁이셨다. 문화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부지런히 참석하셨는데, 인자한 성품임에도 불구하고 문화계 대표에 대한 예우가 부족하면 크게 화를 내셨다. 소탈한 성품이었으나 문화예술을 푸대접하는 일에 대하여는 준열하게 나무라시며 선진국의 경우 문화예술인에 대한 예우가 얼마나 극진한가에 대하여 자주 얘기하셨다.

예술의 향기가 없는 도시, 그 삭막한 도시를 어찌 상상할 수 있겠는가! 문화예술이 생기를 잃지 않도록 마음을 모으고 그 내용을 기록하여 후대에 남기는 일은 어떤 일보다 중요하다. 지난해 직전 문화원장님의 타계에 이어 지역문화 태동기의 주역들이 유명을 달리하는 일이 이어지니 포항예술사의 편찬을 더욱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예술사 편찬을 위한 예산편성을 몇 차례 요청하였으나 재정적 어려움으로 성사되지 않았다. 아무리 어려워도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문화예술 운동의 증인들이 생존해 계실 때 지역예술사 정립을 위한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포항의 예술사 편찬은 만시지탄이나 당연지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