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목 대구가톨릭대 교수
서정목 대구가톨릭대 교수

한국의 양궁은 세계 최고이다. 과거 올림픽 양궁경기에서 한국선수들이 금·은·동메달을 모조리 차지하니 결승전에서 화살의 발수도 줄이고, 활을 쏘는 시간도 줄이고 갖은 꼼수를 부려서 한국의 독주를 막고자 했다. 그 무엇보다도 한국의 양궁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엄정한 선수 선발과정이다. 과녁에 맞은 화살의 수를 헤아려 선발하니 공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번에는 복싱을 보자. 복싱의 체급은 체중에 따라서 선수들을 구분해 놓았다. 보통 헤비급, 미들급, 웰터급, 라이트급 등 십여 개의 체급으로 나뉜다. 복싱에서는 체중이 곧 파워이기 때문에 체급을 무시한 복싱경기는 불공정하다. 그래서 체급별로 구분한 복싱은 그 과정이 공정하다 할 것이다. 80∼90㎏대의 헤비급 선수와 40㎏대의 플라이급 선수가 한 링에서 시합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름 양궁은 양궁대로, 복싱은 복싱대로 공정하다. 과거 해방 직후에는 각 대학별로 입학시험이 시행됐다. 그 이후의 예비고사, 그리고 필자와 같이 386세대의 학력고사는 비교적 단순했다. 예비고사 시대에는 예비고사, 본고사를 병행하다가 예비고사와 내신 성적으로 신입생을 선발했다. 그 이후에 학력고사로 대체됐다. 1994년부터 실시된 수학능력시험은 대학별 본고사, 내신 성적, 면접, 논술 등으로 구성되고 각 영역의 채택여부, 반영비율, 그리고 평가방법 등은 대학의 자율로 운영되도록 하였다. 시대에 따라 입시제도는 변화해 왔다.

오늘날 대학입학 전형의 종류와 제도는 너무 복잡해서 대학교수인 필자도 다 알 수가 없다. 그럴 수밖에 대학별, 지역별, 전공별, 시기별로 합종연횡하다 보면 기하급수적으로 그 종류가 늘어난다. 수시전형에서는 정시전형 이전에 내신 성적, 면접, 논술 등의 시험을 통해 입학생을 선발하는 방식이라면, 정시전형이란 일제히 치러지는 대학수학능력고사의 결과를 근거로 입학생을 선발하는 방식이다. 정시전형은 양궁에서 과녁에 적중한 화살의 수를 세는 것과 같이 본인이 득점한 순서대로 합격, 불합격을 가르면 된다. 가장 공정한 시험방법이다. 그래서 최근의 입시 불공정 문제와 관련해서 정부는 수능의 정시 비중을 확대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겉으로 정시전형은 공정해 보이지만, 고소득, 고학력 가구의 자녀가 수능점수를 잘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수시전형은 기회의 균등을 제공하고 자신의 특기, 소질, 그리고 그 무엇보다 중요한 잠재력을 개발하는데 장점을 지니기는 하지만 학종, 스펙, 평가 등과 관련된 각종 부정과 비리의 가능성이 크다. 양궁과 같은 결과의 공정, 복싱과 같은 과정의 공정을 기대할 수 있는 합리적인 입시제도는 없을까! 이 정부가 풀어야 할 큰 숙제이다. 동시에 두 가지 가치를 구현할 수 없다면, 향후 어느 방안이 4차 산업혁명시대에 더 부합되는 인재를 키울 수 있을 것인가도 고려해야 할 한 꼭지이다. 이웃 일본에서는 2019년부터 수능을 폐지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사회, 문화가 가장 많이 닮은 나라이다. 이들이 왜 수능을 폐지하는지, 다른 대안이 무엇인지 눈여겨 볼 일이다. 이유가 있을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