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조선 시대 당쟁사의 이면에는 정적을 탄압하고 제거하기 위한 파당 정치꾼들의 무시무시한 ‘음모’와 ‘조작’이 난무한다. 그 중에도 중종(中宗) 14년 훈구파들이 신진사류 조광조(趙光祖) 일당을 죽일 목적으로 일으킨 기묘사화(己卯士禍)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역사는 대궐 뜰의 나뭇잎에 꿀물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글씨를 써서 벌레가 갉아먹게 하여 사단을 만들었다고 적고 있다. 이 만화 같은 이야기는 오늘날 트집거리를 만들기 위한 조작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정적의 집에 무기들 몰래 갖다 놓고 들이쳐서 ‘반란죄’를 뒤집어씌우기도 했다는 야사의 틈새를 보면 사색당파 권력다툼의 살풍경은 상상을 초월한다.

김대업(金大業)의 이회창 아들 병역 비리 조작사건인 ‘병풍(兵風) 사건’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 악행이 정권의 향배를 가르는데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계량하기 어렵지만, 그는 승자의 편에 선 추악한 죄를 저지르고도 고작 1년 10개월의 징역을 살았을 따름이다. 김대업은 2016년 강원랜드 등의 CCTV 교체 사업권을 따주겠다며 2억5천만 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필리핀으로 달아났다가 얼마 전 체포돼 송환됐다.

‘조국 대란’을 넘어서자마자 정국은 급속도로 내년 4월로 예정된 총선 격전으로 전환되고 있다. 집권세력은 쓰레기통에서 대략 두 개의 부비트랩을 끄집어냈다. 그 첫 번째는 지난 2017년 초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정국에서 논의된 ‘계엄령 검토’에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연루되지 않았느냐는 의혹이다. 총대를 멘 인물은 진보 시민단체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이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촛불 정국 계엄령 문건에 대해 “청와대가 가짜 최종본 문건으로 국민을 우롱하고 국가를 혼란에 빠뜨렸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군인권센터 임태훈은 즉각 하 의원이 주장하는 문건을 ‘위·변조된 문건’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검찰은 더불어민주당의 ‘세월호 재수사’ 요구에 특별수사단을 만들어 다시 수사하겠다고 화답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등 책임자 122명을 오는 15일 고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제1야당을 이끄는 황교안 대표를 겨냥한 총공세가 시작된 것이다.

이주영 자유한국당 의원은 군인권센터가 제기한 ‘기무사령부 계엄문건 황교안 관여’ 의혹에 대해 “제1야당 대표를 흠집 낸 최악의 정치공작 작태”라면서 “제2의 김대업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역사는 돌고 돌아 또다시 한바탕 정치보복의 망나니 ‘칼춤’을 예고하고 있다. 온갖 실정(失政)으로 지탄받는 문재인 정권이 5년이 넘은 ‘세월호’ 화두를 여전히 동아줄로 여기는 모습은 만감을 부른다. 민주당 이철희 의원의 말처럼 이 ‘낡은 정치 문법’에 목을 매는 저질정치는 참으로 끈질기다. 여러 차례의 실험에도 나뭇잎 꿀물 글씨 ‘주초위왕(走肖爲王)’을 갉아먹는 벌레가 발견되지 않은 것은 또 하나의 아이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