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오랜만에 연극 ‘산불’을 보았다. 차범석 선생의 이 작품은 널리 알려진 작품이지만 연극을 통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극단 예전의 중견 배우들이 열연한 이 작품은 6·25 분단의 비극적 상황을 리얼하게 볼 수 있게 해준다. 지방의 척박한 문화 예술 환경하에서도 지역 연극인들의 중후한 연기는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연극의 출연진들이 모두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여 작품의 토속 성을 높였고 무대와 관객의 거리를 훨씬 좁혀주었다.

이 연극은 6·25 전쟁기간 중의 산골 주민들의 애환을 잘 보여주었다. 조용하던 시골 마을도 인민군 점령으로 좌우 이념의 갈등이 시작된다. 마을을 점령한 인민군이 ‘위대한 수령’ 만세를 외치고, 인민군 퇴출 후 국군이 진주하여 부역자를 색출한다. 동네의 청년 전직 교사 규복은 북한의 빨치산에 가담하여 활동한다. 그는 어디로도 갈 수 없어 대밭에 숨어 사는 신세가 되어 버린다. 극한 상황에서도 피어나는 과부와 규복의 3각 애정 관계는 관중을 무대로 끌어들인다. 무대 중간 중간 배고픈 김 노인의 밥을 달라는 ‘밥- 도-’라는 외침은 관객들의 실소를 자아낸다. 토벌대에 의해 사살되어 돌아온 규복의 비극적 죽음이 이 연극의 피날레이다.

몇 해 전 프랑스에서 피카소의 ‘조선의 비극’을 본적이 있다. 프랑스 공산 당원이었던 피카소는 미국의 침략전쟁을 상징적으로 작품을 그렸다. 미국에서 활동한 소설가 김은국은 ‘순교자’(martyr)를 통해 전쟁의 비극을 잘 묘사하였다. 북한 땅에서 ‘하느님이 있느냐’는 공산당의 질문에 돈독한 신앙심을 보였던 목사가 오히려 신을 부정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이 소설이 영화화되었을 때 기독교인들이 철저히 반대한 이유이다. 어릴 때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밤새워 읽은 적이 있다. 6·25전쟁 시기의 빨치산과 보수 우익 등 여러 군상을 만날 수 있다.

이 연극을 보고 돌아오면서 나는 내 고향에서 겪은 나의 6·25를 회상해 본다. 내 나이 여섯 살 때 격은 전쟁의 비극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는 인민군 치하에서 여러 달을 보냈다. 나는 인민군 아저씨의 총을 만져 보기도 하고, 뒷산 굴속에 숨어 있는 고모의 심부름도 자주 하였다. 인절미를 해 달라는 인민군에게 그것을 할 줄 모른다고 손을 내젓던 아주머니, 인민군 퇴각 후에 사랑방에 남아 있던 그들의 물통, 탄피 통, 허리띠는 우리들의 생활용품이 되었다. 서울대 졸업식에 간 후 행방불명된 집안 아저씨도 당시의 주역들도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어언 해방 75년, 분단의 세월 70년도 함께 흐르고 있다. 주변에는 아직도 가족의 생사를 모르는 사람도 많다. 내 주변에는 전쟁 통에 행방불명된 부친을 그리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다. 남북의 통일이 어렵다면 헤어진 가족이라도 만나게 하는 것이 인간적 도리이다. 여하튼 연극 ‘산불’은 전쟁과 이념 갈등, 인간의 욕망, 좌절을 유감없이 보여준 훌륭한 작품이다. 이러한 분단 문학이 이념의 갈등과 분단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치유하는 도구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