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미각’
김민호 외 지음·문학동네 펴냄
교양·2만원

맛은 혀끝에서만 완성되지 않는다. 진정한 진미를 느끼는 데 아는 것은 힘이 된다. 맛있으면 궁금해지고, 알고 먹으면 더 맛있으니까!

‘중화미각’(문학동네)은 한국중국소설학회에서 활동하는 인문학자 열아홉 명이 중국 역사와 문학 속 스무 가지 음식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알면 알수록 당장 근처 중화요릿집으로 달려가고 싶게 만드는 맛있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동파육은 항주의 인기쟁이 소식이 백성들에게 잔뜩 선물 받은 돼지고기를, 다시 백성들과 함께 나눠먹으려고 만든 요리다. 마파두부는 다리 옆 작은 식당 진씨 아주머니가 상인과 노역자들의 허기를 달래주기 위해 부스러기 고기와 두부에 갖은양념과 기름을 넉넉하게 넣고 맛있게 볶은 요리다. 만두, 포자, 교자, 소매, 혼돈…. 소가 있거나 없거나, 옆이 터졌거나 막혔거나. 이름도 모양도 재료도 다양하고 오랜 세월 사랑받아온 만두는 사람 머리를 대신해 제갈량이 신에게 제물로 바쳤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태생부터 애민정신 가득한 음식인 셈. 친숙한 중국 음식 중에는 얽힌 이야기도 조리 방법도 ‘서민적인’ 것이 많다. 어렵지 않기에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고, 지역별로 입맛별로 응용하기도 쉬웠다.

만두라는 명칭이 원래 ‘오랑캐 머리’라는 뜻의 만두(蠻頭), 사람 머리로 속였다는 뜻의 만두(瞞頭)에서 음식을 뜻하는 만두(饅頭)로 변모해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 만두의 탄생 배경에 인간과 생명을 존중하는 정신이 담겨 있다. 남만 현지 사람들은 사람을 죽여 그 머리를 제물로 바쳐 신의 분노를 잠재웠지만 제갈량은 가짜 사람 머리, 즉 만두를 만들어 누구의 생명도 희생시키지 않았다. 제갈량으로 상징되는 중원의 이성적 인문문화가 남만의 야만적 인신제사를 대체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남만인의 생명이나 중원인의 생명을 똑같이 소중하게 여긴 생명존중과 애민정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음식 짜장면은 산동 상인들이 한국에 정착하고 나서 새로운 맛을 더해 만들어낸 국수다. 국경을 넘어와 변신한 화교표 짜장면은 사실 태생부터 초경계적이었다. 멀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 발상지로부터 가깝게는 만주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대륙 서쪽 끝과 동쪽 끝에서 기원한 음식문화가 대륙을 가로지르고 발해를 건너 중국 산동에서 만나 탄생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호떡은 오랑캐라고 지칭되던, 중국 서북쪽 유목민으로부터 전래된 음식이었기에 ‘오랑캐 호(胡)’, ‘떡 병(餠)’을 써서 ‘호병(胡餠)’이란 이름으로 표기되었다. 중국 한나라 무렵, ‘병’은 중원으로 들어온다. 당시 황제인 영제가 참깨호떡의 탐식가였다. 이후 호떡은 개방적이고 융합적인 당나라 문화에 편입되며 동아시아 각지로, 조금씩 다른 형태로 퍼져나갔다.

만한전석(滿漢全席)은 만주족과 한족의 진귀한 요리를 모두 모아놓은 최고의 연회로 알려져 있다. 만한전석의 기원은 강희제가 만주족과 한족의 화합을 위해 천수연을 연 것에서 비롯됐다. 무력으로 중국을 통일한 만주족은 폭력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온 공감을 이끌어내야 했다. 이를 식탁 위에서 실현하려고 연 연회가 바로 만한전석이다.

훠궈.
훠궈.

뜻밖에 이 책은 훌륭한 미식 가이드도 된다. 북경오리구이를 굽는 방법으로는 오리에 쇠꼬챙이를 꽂아 숯불 위에서 구워내는 ‘차사오(叉燒)’와 화로 위에 오리를 거꾸로 걸어두고 은은한 불로 굽는 ‘과루(掛爐)’, 그리고 외국인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화로 안에서 뜸들이듯 굽는 ‘먼루(燜爐)’가 있다는 사실. 훠궈는 대표적인 요리법만도 여섯 가지다. 입문자에겐 개인 소스를 만드는 일이 심리적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는데, 어렵지 않게 시작하려면 마장이나 간장을 기본으로 해 다른 것을 첨가해나가는 게 좋다.

한편, 중국에는 손님을 열렬히 환대할 때 꼭 내오는 생선 요리가 있다. 약간은 낯선 이름, ‘쑹수구이위’라는 다람쥐 모양의 생선 칼집 탕수 요리다. 그런데 생선이면 그냥 생선이지 왜 하필 다람쥐 모양일까? 이는 쑹수구이위의 재료 잉어가 원래는 신에게 바치는 제사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맛있는 걸 그냥 지나칠 리 없는 청나라의 대표 미식가 건륭제가 잉어를 요리로 만들어 바치라 명했고, 요리사는 고심 끝에 잉어의 모습을 쏙 감춘 다람쥐 모양을 한 탕수 요리를 만들어 식탁에 올린다. 그것이 바로 쑹수구이위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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