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정치권에 총선 물갈이론이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대구·경북지역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겨냥한 물갈이론은 지역의원들에게 위기감을 안겨주고 있다. 지역 출신 대통령을 수차례 배출한 대구·경북지역이지만 총선 때만 되면 어김없이 물갈이론에 시달리는 지역의원들의 처지가 안쓰럽고 딱하게 여겨질 정도다.

지난 5일 충청출신의 재선의원인 자유한국당 김태흠 의원은 “영남권, 서울 강남 3구 중진은 용퇴하거나 험지에 출마하라”며 ‘중진 용퇴론’을 주장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동안 인위적 물갈이보다는 통합을 강조하던 황교안 대표에게 당 운영 방식을 당장 바꾸라고 요구하고 나선 셈이다. 김 의원이 지목한 영남권과 강남 3구의 3선 이상 의원을 꼽아보면 총 16명에 이른다. 6선 김무성 의원을 시작으로 △5선 이주영 정갑윤 △4선 김재경 김정훈 유기준 조경태 주호영 △3선 강석호 김광림 김세연 김재원 여상규 유재중 이종구 이진복 의원 등이다. 이중 불출마 선언을 한 사람은 김무성 의원뿐이다. 특히 김 의원이 거론한 ‘원외 지도자’에는 내년 총선에서 영남권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홍준표 전 대표,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 등 한국당 대권후보들이 포함돼 실제 지목한 대상은 20여 명까지 늘어난다.

대상 의원들의 반발 역시 거세다. 부산의 4선인 김정훈 의원은 즉각 기자회견을 통해 “기준 없이 특정지역만 거론한 것은 문제”라며 “게다가 3선이상 중진들은 정치를 10년 이상 한 사람들인데, 누가 나가라고 해서 나가고 들어오라고 해서 들어올 사람들도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대구의 4선인 주호영 의원도 “현재 TK지역 한국당 의원들 가운데 초선 비율이 국회 평균 37.2%에 비해 현저하게 높은 63%인 이유도 우리 지역이 물갈이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라며 “이 같은 기조가 계속된다면 지역의 정치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대로 따른다면 향후 대구·경북의 경우 원내대표, 국회부의장, 당대표는 맡을 생각 말라는 얘기가 된다는 설명이다.

정치권에선 특정지역을 겨냥한 무차별 물갈이론은 형평성이 없고, 당내 분열을 자초할 뿐 아니라 현실적인 실현가능성도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만약 한국당이 영남권 중진의원을 모두 공천에서 제외할 경우 초·재선의원만 남게 될 텐데 누가 당을 이끌고 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더구나 정치의 난맥상은 총선 물갈이율과 관련없어 보인다. 16대 국회 이래 역대 총선의 물갈이 비율은 평균 46%였고, 17대 총선에서는 물갈이 비율이 무려 72.5%로 초선의원이 187명에 달했다. 20대 국회 역시 절반 가까운 49.3%가 물갈이됐다. 오히려 과감한(?) 물갈이에도 불구하고 정치가 나아지지 않고 있는 이유가 뭘까 되짚어봐야 한다. 바로 자신만이 선이고 상대는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태도, 서로 타협치않는 좌우 진영논리 등이 더욱 큰 문제다. 이러니 물갈이론이 자칫 각 당의 당리당략이나 지도부의 편가르기에 악용되지나 않을까 걱정만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