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수 경

늦가을 바람녘

비 맞은 감이 지네

남정들 썩은 삭신을 덮고

허옇게 허옇게 지리산 청마루도 흐려지는데

지리산 감나무 맨 윗가지

무신 날이 저리 붉은가

얼어붙은 하늘에 꽉 백혀 진저리치고 있는가

된똥 누다 누다

눈꼬리에 마른 눈물 달은 자식들처럼

감씨 퉤퉤 뱉다 기러기떼

선연한 노을 끝으로 숨어버린 남정들처럼

잘못도 용서도 구할 수 없는

한반도 근대사 속을

사람 지나간 자취마다 하얗게 쏟아지는

감꽃 폭풍

지리산 늦가을 땡감 나무 맨 윗가지에 매달린 감을 보며 시인은 이 땅 근대사의 아픔을 떠올리고 있다. 해방공간의 지리산은 이념으로 뜨거운 남정네들이 산으로 숨어들었다 이름 없이 숨져간 아픈 역사를 안고 있다. 시인은 붉은 감을 보며 선연한 노을 끝으로 숨어버린 파르티잔들을 떠올리고 있음을 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