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영 감독, ‘론스타 사건’ 소재
영화 ‘블랙머니’로 7년 만에 복귀

영화감독 정지영. /연합뉴스

“우리는 금융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지만 정작 그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블랙머니’는 그 실체를 ‘재밌게’ 알려주고 함께 고민하기 위해 만든 영화입니다.”

‘남영동 1985’(2012) 이후 7년 만에 영화 ‘블랙머니’로 돌아온 정지영 감독(73)은 새 영화를 이같이 소개했다.

오는 13일 개봉하는 영화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한 뒤 2012년에 매각하고 떠난 사건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당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부실 금융기관으로 만들어 헐값에 인수해 팔고 떠났다는 ‘먹튀’ 논란이 일었고, 영화는 이 사건의 진실을 검사 양민혁(조진웅 분)의 시각에서 추적한다.

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정지영 감독은 “대중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소신을 밝혔다.

“사회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소재를 선택하긴 하지만, 항상 많은 대중이 봐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영화를 만들죠. 내 영화는 재밌게 만들어서 관객을 끄는 것이 목적이죠. 그래서 저는 아티스트가 아니에요. 아티스트는 관객을 의식하면서 영화를 만들면 안 되거든요. 이번 영화도 대중이 이해하기 힘들면 실패라고 생각했죠.”

쉬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정 감독이 택한 방식은 양민혁 검사를 경제를 잘 모르는 사람으로 설정한 것이었다.

“사건의 내막을 캐다 보면 어려운 용어들이 나오는데, 이미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이 주인공이라면 관객과의 소통이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경제를 잘 모르는 검사를 주인공으로 창조해 그가 관객과 함께 관객 입장에서 사건을 파헤치도록 했어요.”

정 감독은 “어려운 경제용어는 자막을 써서 (해설)해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러면 영화의 리얼리티가 깨질 것 같아서 그건 참았다”고 덧붙였다.

‘블랙머니’는 정 감독이 6년 전부터 준비한 영화지만, 빛을 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남영동 1985’ 이후 7년 동안 영화를 못 한 이유는 내가 지난 정권의 블랙리스트 1호였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내가 하고 싶은 영화 말고 멜로드라마 연출도 준비해봤었는데, 잘 안됐죠. 내가 블랙리스트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서는 화가 나기보다는 어처구니가 없더라고요. 내가 이런 시대에 살고 있나? 싶었고…. 생존권을 박탈당한 것이니까요.

정 감독은 “론스타 사건이 지난 정권 때 있었던 일이라 비밀리에 준비했고 투자자들이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국민 펀딩까지 받았는데, 시대가 바뀌었는지 투자자가 나타났다. 그래서 하게 됐다”고 전했다.

실화를 다룬 만큼, 영화를 보다 보면 창조된 인물과 사건들이 실제 어떤 인물과 사건으로부터 모티브를 얻었는지 궁금해진다.

정 감독은 “관객들이 추론해서 줄긋기하는 재미를 주고 싶다”고 웃었다.

“나는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주지만, 관객은 그것을 여러 가지 형태로 해석할 수 있죠. 영화는 일단 만들어지면 관객의 것이거든요. 저는 그래서 영화를 단정 짓기보다는 열어놓아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1982년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로 연출 데뷔한 정 감독은 40년 넘게 영화계에 몸담은 한국 영화의 산증인이다. 그는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꾸준히 작품활동을 한다.

“나는 할 수 있는 게 영화밖에 없어요. 강단에도 서봤지만, 그만두게 되더라고요. 앞으로 몇 작품만 하고 그만하고 싶기도 해요. 관객들이 정지영이 만드는 사회성 있는 고발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렇지만 ‘정지영이 만드는 사회성 있는 영화는 그래도 재밌더라’ 이런 말을 들으면 계속해도 되겠죠? (웃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