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며칠 전의 일이다. 늘 생글생글 웃으며 밝음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후배 한 명이, 다짜고짜 전화 와서는 팔공산 단풍 구경이나 가자고 했다. 직감적으로 또 무슨 일이 생겼구나 싶었다. 사연인즉슨, 사내 새 프로젝트를 같이 한 팀원들끼리 언제 회식하기로 한 모양인데, 잘나가던 후배만 쏙 빼놓고 나머지 팀원들끼리 카톡방을 만들어 서로 회식 날짜를 조율하더란 것이다. 한 명이 주도해서 이루어진 일인 데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늦게 초대를 받긴 했지만, 암튼 과정을 다 알고 나니 기분이 매우 더러웠다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선배랍시고 알게 모르게 네가 혹 미운 짓 한 게 없느냐고 다그쳤을 법했다. ‘인(仁)이란, 마치 활쏘기와 같다. 활 쏘는 사람은 자기의 몸과 마음을 바로 세우고 활을 쏘는데, 활을 쏘아 적중 못시키면 나를 이긴 사람을 원망 않고, 도리어 그 원인을 나에게서 찾을 뿐이다(仁者如射 射者 正己而後發 發而不中 不怨勝己者 反求諸己而已矣)’라는, 맹자 <공손추>의 한 구절을 들먹거리면서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가 잘못한 것이 없다 하고, 심지어 얼마 전엔 파격적인 승진과 보너스까지 받아서 멋진 식사까지 팀원들을 대접할 때만 해도 다들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러니 본인이 더 당황스럽다고 했다.

그 순간 문득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 떠올랐다. ‘남의 고통을 함께 슬퍼해 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남의 성공을 진심 축하해 주기 위해서는 남다른 인격이 필요하다’라는. 사실 그렇다. 본인이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어느 순간 상대가 저를 이유 없이 미워하거나 거리를 두면 그것은 100% ‘질투’일 가능성이 크다. 질투는 ‘내’가 갖거나 가져야 하는 것을 ‘네’가 갖고 있다는 데 대한 불편함, 곧 결핍의 감성이다. 그렇기에 질투를 하면 할수록 그것은 ‘나’의 결핍을 온 천하에 드러내는 일이 될 뿐이다.

이와 관련해 이이가 쓴 <김시습전>에는 재미난 일화가 하나 전한다. 어느 날, 당시 국사(國士)로 칭송받던 서거정이 조정에 들어가려고 앞길의 잡인들을 물리칠 때였다. 거지같은 차림의 김시습이 갑자기 ‘剛中(서거정의 字)아! 너 요새 편안하구나’하며 백성들 앞에서 어릴 적 친구였던 서거정을 무안케 하였다. 그러자 서거정은 화를 내는 대신 도리어 웃으며, 수레를 멈추고 이야기를 나누니 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는 내용이다.

5세 신동이라 불리며, 후에 <금오신화>를 창작해 고소설사의 한 획을 그은 유명한 문인이었건만, 안타깝게도 큰 벼슬길엔 오르지 못한 김시습의 질투도 재미있지만, 이를 분노나 응징이 아닌 웃음으로 응대한 서거정의 모습도 대단히 인상깊다. 그의 이러한 대인배적인 마음이, 아마 세종부터 성종에 이르기까지 무려 여섯 왕을 모시면서 파란만장한 정국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동력은 아니었을까?

만일 살면서 질투와 질시의 대상이 된다면, 결핍으로 똘똘 뭉친 그들의 감성에, ‘분노’ 대신 서거정처럼 따뜻한 ‘웃음’을 지그시 한번 보내보면 어떨까? 아마 우리네 삶에서 스트레스가 절반은 확 줄어들지도 모를 일이다.